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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나를 지키는 성전, 가평에 지은 콘크리트 하우스
SNS에서 처음 그녀의 집을 본 날의 감흥이 새록하다. 그간 많은 집을 봐왔지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과감한 형태와 구조. 노출 콘크리트의 터프한 몸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다정하고 영적 기운이 근사한 집. 반려견 치토 및 계피와 함께 사는 조문영 씨에게 그곳은 안전하고 단단한 성전 같았다. 사는 사람 이야기 편집 디자이너 조문영과 반려견 계피와 치토 내가 요즘 자주 떠올리는 단어가 ‘공간 자립’이다. 재정적 자립이나 정서적 자립도 어쩌면 공간 자립에서 시작되고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믿음이 있다. 내게 맞는 가구를 고르고, 침구를 장만하고, 더 나아가 집 구조와 형태까지 결정할 수 있다면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편안하고 당당한 자족으로 꽉 차 있을 확률이 높다. 조문영 씨를 인터뷰하고, 그녀의 집 구석구석을 둘러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집이라고 하면 으레 서울의 아파트, 네모반듯한 구조, 세 개 이상의 방 같은 요소를 떠받들며 살지만 그 프레임 바깥에도 우주 같고 꽃밭 같은 집은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새삼스러운 자각. 원하는 것과 굳이 필요치 않은 것이 흑과 백처럼 확실하고, 구석구석 박력이 넘치는 이 집은 도로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강과 숲이 우거진 가평의 국도를 달리다 마을 길로 우회전하면 채 2분도 안 돼 만날 수 있다. 2층에서 내려다본 풍경. 2층 경사로 옆에 세워진 거인처럼 든든하고 웅장한 콘크리트 벽면이 방공호 같은 안전함을 만들어준다. 어디에서라도 인생은 계속된다 이 집을 짓기 전 그녀는 양평 끝자락인 지평에 전셋집을 얻어 살았다. 다리를 건너 언덕 맨 위 자락에 있는 목조 주택이었다. 홍대 쪽에서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다니다 코로나19로 실직 상태였던 그녀는 어느 날 돌연 경기도행을 택했다. "돌아보면 홧김이었어요. 계피에 치토까지, 반려견이 두 마리로 늘자 퇴근 후 일상이던 저녁 산책이 점점 힘들어졌어요. 괜한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생기더라고요. 애들이 풀숲에 소변을 보고 있으면 식물이 죽으니 조심해달라는 분도 있고요. 안 되겠다, 서울 근교에 마당 있는 집으로 가자, 싶었지요. 양평이 그렇게 큰지도 몰랐고 지평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그곳에 갔어요. 정말 맨 끝 동네, 언덕배기 집이라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주변이 어두우니 집에 불을 켜면 밖에서 안이 더 잘 보이잖아요. 야생동물도 무섭고요. 걱정과 달리 아무 일도 안 일어났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날을 보내면서 시골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어요. 개들도 너무 좋아했는데, 꼭 아침에 일어나 산책하면서 변을 봤어요. 그런 모습을 보는 저도 덩달아 행복하고요. 마침내 일상의 질이 훅 올라간 것 같았지요." 그곳에서 2년간 무탈하게 살았는데, 2022년의 집중호우가 그 집을 나온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연일 폭우가 쏟아지면서 마을 앞에 있던 교량이 두 동강 난 거죠. 사유재산이다 보니 복구도 바로 안 되고 집에 비는 흘러내리듯 해 새집을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쉽지 않았어요. 개가 두 마리라고 하니 집 망가진다며 받아주는 곳이 없더라고요. 집을 지은 건 아버지 덕분이었어요. 제주도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살고 계시던 터라 집 짓는 것도 방법이지 싶으셨던 모양이에요." 지평에서 겪은 2년간의 주택살이 경험도 맷집처럼 든든한 내공이 되어 주었다. "서울을 떠나는 건 비유하자면 퇴사 같은 거예요. 해보기 전까지는 막막하고 아득한데 막상 결단하고 나면 이내 새로운 챕터가 열리지요. 지평에서 살면서 하나 배운 게 있어요. ‘나를 아무 데나 던져놓는 것에 대해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구나. 해보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막다른 길 같던 곳에서 인생은 또 계속되더라고요." 설계 당시부터 세심하게 고려해 만든 콘크리트 선반. 독창적이면서도 입체적 미감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묵직한 포인트다. 집을 지어 살거나 저 멀리 단독주택에 살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층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이런저런 생활의 불편함은 어느 정도까지 감수할 수 있는지, 식탁 차리기부터 정원 가꾸기까지 다양한 집의 시간 중 내가 정말 좋아하는 기쁨은 어떤 것인지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된다. "20대 후반까지는 외로움을 많이 탔어요.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자책도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저란 사람이 좀 더 선명하게 읽히더라고요. 집에 친구들이 오는 건 반갑지만 자정 전에는 가면 좋겠는 거예요. 부부싸움을 하고 우리 집에 오는 친구가 있는데, 아침 밥상을 차려주는 것도 쉽지 않고요.(웃음) 외로움을 타는 줄 알았더니 실은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어딘가에 속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치고 하루하루 내 속도대로 살다 보니 생각만큼 외롭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꽉 차고 풍성해지는 기분이었지요. 집은 너저분하고 잡초는 몇 달째 안 뽑아 정글 같았지만 마음은 조용하니 편했어요. 인생에는 사람보다 큰 것도 있더라고요. 마을이나 자연 같은." 4월의 어느 날 그녀는 SNS에 이렇게 썼다. "몇 초만 집 밖에 서 있어도 절대 인간만 바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지금도 창밖엔 흰나비 둘이 공중에서 짝짓기하느라 바쁘고, 그저께 우리 집에 들어온 나방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조금 더 안전한 구석을 찾아다니고, 황량함 걱정이 무색하게 자고 일어나면 풀과 나무는 쑥쑥 잘도 자라 있고, 비가 오면 그동안 어디 다 있었는지 지렁이들이 끙차끙차 기어 나온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비인간 동물들은 땅 밑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우리 주변을 쉴 새 없이 맴돈다." 그녀와 두 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하다 보니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던 치토와 계피는 제집에 누워 잠이 들락 말락이었다. 천창으로 쏟아지는 빛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북쪽으로 낸 창을 통해 보이는 국유림은 보디가드처럼 든든했다. 조용한 듯 단단한 그녀는 서울에서만 할 수 있는 일에서도 졸업해, 이곳 가평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가고 싶다고 했다. 내 자식들도 그녀처럼 공간으로 자족하고, 땅 위에서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시의 강퍅한 인심을 피해 가평에 마련한 콘크리트 집. 성전 같은 그곳에서 그들 세 가족은 오래오래 안전할 것 같았다. 2층에서 내려다본 풍경. 2층 경사로 옆에 세워진 거인처럼 든든하고 웅장한 콘크리트 벽면이 방공호 같은 안전함을 만들어준다. 지은 사람 이야기 건축가 바이아키텍쳐 이병엽 대표·김괄 실장 독창적 디자인 뒤에 선하고 염치 있는 마음 이렇듯 과감하고 독창적 디자인이 나올 수 있던 배경을 볼까? "바이아키텍쳐 이병엽 소장님·김괄 실장님이 이 집을 설계해주셨는데, 설계 전부터 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치토와 계피가 있으니 명확하게 똑떨어지는 것이 많더라고요. 우선 애들이 노견이라 계단이 없어야 했어요. 침대에서 떨어지면 안 되니 침실 같은 별도의 방도 필요 없었고요. 가구를 포함해 무언가를 계속 사고 바꾸는 일이 제겐 어려워요. 공장에서 무언가를 계속 생산하고, 그걸 위해 또 많은 자원이 들어가고, 얼마 안 가 다시 버려지는 사이클에 대한 부담감이 있어요. 그렇다 보니 선반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구를 빌트인으로 넣었습니다. 가구디자인과를 나왔는데 가구 들이는 걸 싫어하네요.(웃음) 뉴욕에 있는 어떤 집을 떠올리면 별다른 가구 없이 구석에 피아노 한 대가 있고 그 끝에 매트리스 하나만 덜렁 있는 풍경이 떠오르는데, 그런 집을 원했어요. 피아노만큼은 꼭 사고 싶었는데 천고가 높으니 전자피아노만으로 충분하더라고요. 툭 하고 건반을 누르면 마치 동굴에서 연주회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7년 전, ‘카풀’이 유행한 것 아세요? 당시 저는 메가박스 디자인팀에서 일했는데, 집이 있던 홍대 쪽에서 신사까지 차를 몰고 다녔어요. 카풀을 통해 어떤 분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분 절친이 이병엽 소장님이었어요. 그렇게 소장님과 인연이 되고 소장님이 합정에서 운영하던 ‘취향관’에도 자주 드나들면서 이렇게 집까지 짓게 되었지요. 이것저것 세심하게 신경 써주고 땅까지 함께 봐주는 걸 보면서 소장님께 최대한 정확한 매뉴얼을 드려야겠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다며 우왕좌왕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집에 바라는 바와 필요한 것을 PPT로 정리하고, 집에 어울릴 것 같은 플레이리스트도 만들어 공유했어요. 건축가의 수고로움을 최대한 덜어준다는 것이 당시 저의 의지였습니다." 2층에 마련한 수면 공간. 문도 달지 않고 애초에 침실이란 구분도 하지 않아 더 간소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반려견들의 낙상을 방지하기 위해 침대도 들여놓지 않았다. 그녀의 환대를 받으며 들어가 맞닥뜨린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드라마틱했다. 바닥 길이는 19.2m. 저 안쪽까지 공간이 제법 길게 이어지는데, 폭은 5.3m로 상대적으로 좁고 천고는 6m에 달해 세로로 길고, 천장은 아득하게 높은 동굴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저 안쪽 측면에서는 유리 천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종교화 속 그것처럼 내부를 성스럽게 비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만 본다면 이곳을 성당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복층 구조의 집은 구석구석 선택과 집중의 힘이 넘친다. 1층은 별도의 공간 구획 없이 하나의 커다란 직사각형으로 이뤄졌고, 그 위로 단출하게 작은 박스 공간을 올렸다. 2층에 있는 이 작은 공간의 용도는 침실. 문영 씨는 이곳에서 침대도 없이 이부자리만 깔고 잔다. 식탁과 수납공간도 독특하다. 콘크리트와 합이 좋은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스틸로 커다란 주방 시스템을 짜 넣었고, 냉장고와 옷장까지 모두 매립형으로 디자인했다. 무광의 알루미늄 문을 열면 냉장고도 나오고, 옷장도 나오는 식이다. 벽난로 역시 현대적 모습이다. 콘크리트 벽 하단에 직사각 형태로 난로를 매립했고, 그 위로 은빛 연통이 5.9m 높이로 공간을 수직으로 가르는데, 사각과 원통의 도형 놀이처럼 리드미컬한 기쁨이 느껴진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집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2층으로 올라가는 긴 경사로. 또박또박 평범한 계단 대신 15m 길이의 긴 경사로로 길을 냈는데, 런웨이나 활주로처럼 시원한 맛이 있는 데다 휠체어가 지나갈 만큼 폭이 넓고, 양쪽으로 콘크리트 벽이 우뚝 버티고 있어 위아래 어느 쪽에서 보든 그 존재감이 대단하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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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버틴으로 지은 서초구 미니멀리즘 하우스
대학에서는 건축을 전공하고, 사회에서는 인테리어디자인을 전공해 건축의 안과 밖을 다 설계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817디자인스페이스의 임규범 대표가 서초구 한적한 땅에 집과 사무실을 합친 새로운 아지트를 마련했다. 어느 하나 아쉽거나 부족한 점이 보이지 않는 무결점의 공간. 일의 영역에서는 결과물의 완성도가 곧 그 사람의 실력이자 매력이라 공간을 둘러보고 인터뷰를 하는 내내, 아니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공간과 임규범이란 이름이 깊숙하게 각인돼 있다. 사는 사람 이야기 임규범 대표 부부 서초구에 있는 새정이마을. 3호선 양재역에서 내려 녹색 버스를 타고 2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8차선 도로가 펼쳐지는 도심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청계산 자락과 동네 뒷산이 마을 주변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고, 밭일을 하는 사람들도 띄엄띄엄 보였다. 그런 풍경만 놓고 보면 과수원 가는 길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담하고 오래된 놀이터가 있고 화강석으로 지은, 노인처럼 푸근한 단층집이 많았다. 무엇보다 주변이 온통 녹색이라 눈과 마음이 청량하게 시원해지는 기분. 살다 보면 지금 사는 동네가 편하고 좋은 것 같지만, 이렇게 다른 곳에 발걸음을 들여놓으면 또 그곳의 매력이 봄바람처럼 신선하게 와닿는다. 옥상에 마련한 야외 수영장. 이탈리아 남부나 남프랑스라고 해도 될 정도로 빛과 초록 풍광, 트래버틴의 조화가 훌륭하다. 임규범 대표의 집은 큰길 뒤 이면 도로에 자리했는데, 단단하고 모던한 질감의 크림색 트래버틴을 외장재로 택한 데다 수직으로 높은 형태라 유럽의 고급 주택단지에서 봄 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디자인 역시 말끔하고 담백한 모습. 반듯한 사각 형태에 창이 수직과 수평으로 자리 잡았을 뿐 다른 비정형 요소는 없었다. 마중 나온 임규범 대표와 사무실로 사용하는 1층 내부로 먼저 들어섰는데, 우아! 천고가 훌쩍 높았고 천장은 조명이나 배관 라인 하나 없이 일자로 쭉 뻗어 건물의 골격만 힘 있게 도드라졌다. 가구는 딱 두 점. 저 멀리 흰색 원형 테이블이 있었고 입구에는 보테로의 그림처럼 빵빵한 양감量感과 우아한 라인이 돋보이는 이탈리아 브랜드 리빙디바니Living Divani의 치자색 대형 소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중정. 최근 가드닝이 트렌드가 되면서 풍성한 정원을 갖추는 것이 집이나 상공간의 화룡점정이 되었지만, 임규범 소장은 오래된 배롱나무 한 그루만 상징처럼 심었고 그 나무에서는 분홍빛 꽃이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극강의 미니멀리즘을 보여주면서도 둥근 온기로 편안한 공간. 평소 자질구레한 소품도 적절히 섞인 생활 감각 묻어나는 집을 편애하지만, 이런 미니멀리즘이라면 기꺼이 더 들여다볼 마음이 있다. 거실 옆에 있는 다이닝 공간. 사진 상부에 일자로 길게 이어진 틈새가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구멍’이다. 오른쪽 문을 열면 팬트리가 나오고 세탁기와 건조기 역시 안쪽으로 배치했다. 오랫동안 꿈꿔온 ‘트래버틴의 집’ 한 사람의 직업적 커리어는 어떤 곳에서, 어떤 것을 보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무늬와 내용이 결정된다. 월급은 적어도 경험하는 것의 내용이 좋다면 기꺼이 한 시절을 투자할 만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했어요. 백화점에 들어가는 럭셔리 브랜드의 매장 공사를 많이 하는 회사였지요. 미소니, 막스마라, 발렌티노 같은. 그러고 보니 다 트래버틴이 나오는 이탈리아 브랜드네요.(웃음) 그곳에서 3년 8개월을 일했는데, 그때 시공과 디테일을 많이 배웠어요. 트래버틴이란 재료에 애정을 갖게 된 것도 그때였어요. 막스마라 같은 브랜드는 이탈리아에 있는 플래그십을 포함해 전 세계 모든 매장에서 트래버틴을 주요 소재로 사용하거든요. 로마의 판테온 신전,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센터, 미국 샌디에이고의 솔크 연구소도 트래버틴을 외장재로 택했는데, ‘영원성’이 느껴지는 그 재료의 질감이 좋았어요. 언젠가 내 건물을 짓게 되면 꼭 트래버틴을 쓰겠다고 다짐했지요. 신축이 속도를 내면서 토탈석재(1999년 설립한 건축자재 회사로, 천연 대리석을 수입하고 직접 가공한다) 민병준 전前 부사장과 의기투합했고, 그가 이탈리아까지 직접 날아가 여러 종류의 트래버틴을 보여주고, 저는 한국에서 그것을 일일이 보면서 지금의 대리석으로 최종 결정 했습니다. 그곳에서 절삭까지 마친 후 배로 들여왔고요. 비쌀 거라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 전체 마감재를 놓고 보면 중상위 등급이 아닐까 싶어요. 시간이 지나면 ‘땟물’이 흘러내리고 북향에 접한 면에는 이끼가 낄 수도 있지만, 자연과의 상호작용이나 시간성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실망스러운 부분은 아니지요. 미감의 차이일 수는 있어요. 표면에 ‘곰보’라고 해서 작은 구멍이 있는데, 저희 어머니도 마뜩잖게 생각하는 부분이지요.(웃음)" 좋은 집이 무엇이냐? 정의한다면 나를 닮은 집. ‘확실하게’ 좋아하는 마감재가 있고, 그 소재에 대한 사랑과 사연을 길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곳은 이미 너무도 매력적인 곳이다. 집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는데, 눈 반짝 귀 쫑긋 세우고 듣는 재미는 결국 이런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욕실 창 너머로는 청계산과 새정이마을이 사시사철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강원도 깊은 산속에 와 있는 듯한 황홀함! 지은 사람 이야기 임규범 817디자인스페이스 대표 좋은 공간이 좋은 시간을 만든다 미니멀리즘에 대한 확실한 철학과 애정 역시 임규범 대표가 만드는 공간의 큰 줄기이자 키워드다. "공간을 구획하고 디자인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이 기계 설비예요. 냉난방 시설이며 전기 배선 같은 것을 말끔히 숨기고 싶은 거죠. 그래야만 건축 본연의 매력이 충분히 살아나거든요." 임 대표의 간결함을 향한 의지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집요하다. 낮에는 조명을 켤 필요가 없으니 천장의 중앙 조명은 단호히 No, 여름에만 사용하는 에어컨에 가리개를 만들어 가리는 것도 충분치 않아(그 가리개가 또 보이지 않는가) 배기, 흡기 시스템까지 벽 안에 매립해 에어컨 위치에 관한 ‘단서’마저 찾을 수 없게 했다. 그렇다면 에어컨은 어디에 있는가. 건물 3층에 있는 거실을 예로 들면 주방 시스템 상부 안쪽. 바깥에서 보면 상부장 위에 절개선처럼 일자로 긴 줄이 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통로 역할을 한다. 미니멀리즘의 실용과 미학은 이 밖에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거실 창호 시스템은 한쪽으로 3m 이상 길게 열리는 필로브Filobe 제품으로 선택해 풍경이 쪼개지지 않도록 했고, 침실에 설치한 영화 감상용 스크린과 프로젝터는 벽 안에 매립해 리모컨 버튼을 누르면 둥 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나 같은 기계치는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로 구동하는 그런 최신 기술을 보면 단박에 매혹됨과 동시에 ‘참 편하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본인이 생각하는 불필요한 것을 감추고 나면 다른 한쪽에서는 공간의 힘과 매력, 그리고 넉넉함이 맥시멀리즘으로 부풀어 오른다. 그러고 보면 미니멀리즘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공간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일이지 단순히 공간을 비우는 것이 아니다. 접견실 위층에 별도로 마련한 회의실 겸 미팅룸. 건축과 인테리어가 조화롭게 맞물리면서도 인테리어디자인이 중심이 된 공간은 확실히 내부의 편의성과 퀄리티가 높다. ‘아, 이건 좀 아쉽다’ 하는 것은 없고, ‘내부까지 정말 좋다’ 하는 감탄만 흘러나온다. 마을 풍경을 바라보며 운동할 수 있도록 배치한 피트니스룸, 저 멀리 청계산이 보이는 드레스룸, 욕실과 침실을 구분 짓는 커다란 벽체부터 라운지체어 밑으로 보일러 시스템을 매립해 사시사철 온수가 나오는 옥상의 야외 수영장, 그리고 그 옆으로 설치한 심플한 디자인의 샤워봉까지. 수영장 한쪽에는 야외 바비큐와 캠핑을 위한 금속 수납장과 수전이 설치돼 있고 그 옆으로는 트래버틴으로 만든 테이블을 놓았는데, 이 테이블은 캠핑할 때 식탁으로 자동 변신한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시선과 동선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주방에서 요리를 하면서도 반대쪽에 있는 욕실 창이 보이도록 했고, 옥상에서 필요한 식재료를 바로바로 꺼낼 수 있도록 꼭대기 층 계단참에 냉장고를 넣었습니다. 한국처럼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심한 곳에서는 야외 수영장 관리가 어렵지만 겨울에는 물을 데울 수 있고, 물이 계속 순환하기 때문에 동파의 위험은 없을 거예요. 집과 사무실을 합치는 것이 오랜 꿈이었어요. 이제야 제가 원하던 라이프스타일이 세팅돼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공간이 바뀌니 시간도 달라졌어요. 바라보는 풍경이 달라졌고, 아내와 나누는 대화가 달라졌습니다. 이곳으로 와 업무 시간을 아침 8시에서 오후 5시로 조정했거든요. 집에 올라와 환복한 후 러닝을 하고 돌아와도 여전히 6시가 안 되어 있는 거예요.(웃음) 마침내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진 거죠.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이면 베이글을 사 오거나 요리를 해 수영장에서 느긋한 아침 시간을 보냅니다. 좋아하는 친구와 지인들도 자주 초대하고요. 좋은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있습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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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을 만끽하는, 44평 아파트
사는 사람 이야기 김지민·윤혜진 부부와 아이들 당신의 안식처는 어떤 모습인가? 김지민 씨는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는 사람이었다. 바로 자연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것. "안식은 편히 쉰다는 뜻이잖아요. 당연히 마음이 편안한 게 가장 중요해요. 어르신들이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게 사실 의학적 근거가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저도 항상 자연과 함께하는 집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었어요." 그 열망에는 부모님과 주택에서 살아본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흙 내음을 맡다 보면 안정감까지 느껴졌다고. 하지만 주택 관리에 우려를 표한 아내 윤혜진 씨를 위해 아파트 안에서 주택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김지민 씨가 바란 주택 같은 집의 핵심은 트인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탁 트인 뷰를 찾아 고층으로 올라갔다. "당시 살던 집은 거실 양쪽의 발코니를 확장한 구조라 파노라마 뷰가 펼쳐졌어요. 막힌 것 하나 없는 시야에 반해 아이들이 아직 어려 뛰어놀기 좋은 집을 찾던 중이었는데도 과감하게 그 집에 살기로 결단을 내렸죠. 좋은 전망을 오래 보며 사는 것도 좋은데, 이제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일까요? 땅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 댁에서 맡던 흙냄새도 그리웠고요." 이사한 곳은 다름 아닌 옆 동이다. 같은 단지 저층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건 단지 구성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동 사이 간격이 넓어 서로의 시야나 채광 및 환기를 막지 않으며, 조경에 신경 써 아파트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안방. 윤혜진 씨가 유일하게 요청한 식물을 키울 공간을 만들었다. 발코니 바닥에 콩자갈을 깔고 수도, 수납장 등을 정리해 화분을 보다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다. "이 집을 8월에 보러 왔어요. 집이 어수선한 가운데 창밖 풍경이 빛나더라고요. 우거진 녹음과 밝은 자연광이 내리쬐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이런 풍경을 보고 자라야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파트에서 주택을 구현하기 위해새로운 집에서는 마음속에 품어오던 이상을 보다 명확하게 구현하고자 했다. 다행히 아내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었고, 덕분에 온전히 자신의 취향과 의도를 반영한 공간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건축이나 인테리어에 관심은 많았지만 해본 적이 없어 어떤 식으로 공사가 진행되는지, 아파트라는 한계 안에서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 몰랐죠. 그래도 꼭 하고 싶었던 건 주방 위치를 바꾸는 것이었어요. 카멜레온 디자인을 선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주방 위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해준 곳이었거든요. 공간이 낱낱이 분리된 구조가 답답해 보여 아쉬웠는데, 모두 싱크를 옮길 수 없다 해서 포기하려던 차였죠. 한데 간단한 일이라 말하는 것을 보고 전문가다운 경험치가 느껴졌습니다." 첫 미팅부터 자신의 바람을 공간에 구현할 방법을 제안해주었기에 김지민 씨 입장에서는 결정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날 카멜레온 디자인과 도출한 리모델링의 방향성은 풍경과 일상이 연결된 집. 뷰 때문에 이사를 결정하고 캠핑과 식물 키우기를 좋아하는 김지민 씨 가족의 취향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인터뷰하는 동안 김지민 씨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너무 좋아요”가 아니었을까. 벌써 1년 반쯤 살고 있는 집인데도 아침에 눈뜰 때면 발코니에서 올라오는 풀 냄새와 거실 양쪽에서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나무들, 맨발로 느끼는 원목 마루의 질감까지. 직사각형의 탁 트인 공용 공간을 만들기 위해 주방 위치를 옮기며 대면형 주방을 만들었다. 아일랜드 뒤쪽의 수납공간이 창을 막지 않도록, 창을 살리고 칸살도어로 가렸다. "아파트에서 구현할 수 있는 제 이상을 모두 담았다고 생각해요.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너무 바빠 이 공간을 요즘 만끽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일까요. 그래도 언제든 아내·아이들과 함께, 때론 혼자 시간을 보낼 공간이 모두 갖춰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생겨요." 고친 사람 이야기 디자이너 정진주 · 현은지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추상적 키워드만 생각하고 세세한 결정은 어려워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김지민 씨는 반대였죠. 첫 인터뷰 당시에는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는데, 방향성이 잡힌 이후부터는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셨어요. 팔맥의 루멘 175 후드를 꼭 사용하고 싶다거나, 붙박이장 없이 수납력을 높일 방법이 있는지 등 구체적으로 바라는 점을 짚어주셨거든요. 저는 현은지 공동 대표와 이를 시각화할 다양한 안을 만들어 보여드리기만 하면 되었죠. 다행히 제안하는 안을 다 좋아해주셨어요." 프로젝트를 담당한 정진주 디자이너는 김지민 씨를 가이드라인이 명확한 클라이언트여서 수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지민 씨는 생각보다 집요한 클라이언트이기도 했다. 각종 마감재와 액세서리 등 공사에 사용할 아이템을 확정 짓는 최종 회의를 14시간이나 진행했을 정도. 공사의 핵심은 공용부 구조를 바꾸는 것이었다. 거실의 내력 기둥으로 구획한 영역의 활용도를 높이고자 바닥면에 붙박이장을 짜 넣었다. 덕분에 큰 짐을 수납함과 동시에 평상처럼 활용하는 새 공용부가 생겼다. "기존 평면은 긴 복도가 집 전체를 가로지르는 구조였어요. 복도를 중심으로 양옆에 방과 공용 공간이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 보니 창 너머 뷰를 제대로 즐기기 어려웠죠. 그래서 기존 거실과 마주 보던 방을 철거하고 주방 위치를 옮겨 거실, 주방, 다이닝을 하나로 연결했습니다. 어디서든 창밖의 자연을 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디자이너가 판단한 공용부의 또 다른 문제는 내력 기둥이었다. 중앙을 가로막아 거실을 온전히 넓게 쓸 수 없어 기둥을 기준으로 새로운 공간을 구상했다. 자연과 가까운 삶을 지향하는 가족인 만큼 정진주 디자이너와 디자인을 총괄한 현은지 공동대표는 실내 중정 등 다양한 안을 제안했고, 캠핑 장비 등 큰 짐을 보관할 장소가 필요하다는 아내 윤혜진 씨의 의견에 따라 평상을 제작했다. 평상 옆에는 작은 화단을 만들어 사시사철 푸른 조화로 장식했다. 하나로 연결된 공용부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여유다. 공용부를 하나로 합침으로써 거실과 주방을 중심으로 현관 쪽에는 자녀 방이, 반대편에는 안방이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 서로 바쁜 일과를 보내는 가족 구성원이 평소에는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이나 주말에는 거실과 주방에 모여 함께 어울릴 것을 염두에 둔 구조다. 특히 평상의 활용도가 높은데, 불과 몇 달 전까지는 작은아들이 데려온 햄스터를 이곳에서 돌봤으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큰아들도 종종 이곳에 나와 게임을 한다고. 안방을 포함한 자녀 침실에서도 핵심은 뷰다. 창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가구를 배치했으며, 안방에는 화분 키우기를 즐기는 윤혜진 씨의 요청에 따라 발코니에 콩자갈을 깔아 정원처럼 꾸몄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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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식구의 놀러가는 집, 사계아방
제주 사계리 마을에 거대한 콘크리트 경사 지붕 집이 들어섰다. 파파레서피 김한균 대표의 가족은 주말이면 이곳에서 온종일 뛰놀고 먹고 쉬며 하루를 보낸다. 반복되는 집에서의 시간을 벗어나 커다란 지붕 아래에서 되찾은 여덟 식구의 새로운 일상. 사는 사람 이야기 김한균 대표와 가족들 아이의 시간은 어른의 시간보다 천천히 흐른다. 미국 듀크 대학교 에이드리언 베잔 교수는 이를 마음의 시간(인지한 이미지가 대뇌피질에 도달하는 시간)과 물리적 시간의 차이를 들어 설명한다. 마음의 시간은 감각기관의 자극을 통해 형성되는 일련의 이미지로 채워지는데, 신체가 노화할수록 이 이미지를 습득하고 처리하는 속도가 느려져 시간의 불일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아이는 어른보다 이미지를 빨리 처리하며,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엮어낸다. 영국 배스 대학교 크리스티안 예이츠 교수는 “우리가 감지하는 시간은 이미 살았던 기간의 비율에 좌우되므로 다섯 살 어린아이가 보내는 5년은 마흔 살 어른의 40년과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의 이론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시간은 기억에 더 많이 남는다. 그것은 차곡차곡 저장되었다가 문득 떠오르는 추억이 되고, 그중 어떤 순간은 평생을 지탱하는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네 아이의 아빠이자 뷰티 브랜드 파파레서피를 운영하는 김한균 대표가 제주에 세컨드 하우스를 지은 데에도 이 같은 생각이 바탕이 됐다. 그는 첫째 딸의 피부 고민 때문에 천연 원료로 제조하는 화장품 브랜드를 창립했을 정도로 가족이 삶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일 때문에 한 지역에서 1년 이상 살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자주 집을 옮겼어요. 40대에는 일보다는 아이들과 조금 더 여유롭게 보내고 싶었고, 아직 아이들이 어릴 때 자연 속에서 가족과 좀 더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김한균 대표 부부와 네 아이, 아내의 부모님까지 여덟 식구는 5년 전 제주로 이주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오롯한 가족의 시간을 두루 확보하기 위해 학교 근처 아파트와 자연이 가까운 주말 주택을 오가는 두 집살이를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사계리는 바다도, 산도 가까우면서 마을도 어느 정도 형성된 곳이었어요. 특히 제주에 올 때마다 좋아하던 산방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산방산이 풍경처럼 자리하는 집을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김한균 대표는 사계리 마을에 세컨드 하우스를 짓고,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사계아방’(아방은 아버지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집이 완성된 뒤로 김한균 대표 가족은 슬기로운 두 집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 일과가 없는 날이면 늘 이곳에서 지내며 정원을 뛰놀거나 수영하고, 할머니와 텃밭에서 채소를 돌본다. 요리가 취미인 김한균 대표는 부지런히 삼시 세끼를 담당하고, 저녁이면 야외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쏟아질 듯한 별을 보며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사계아방은 정말 놀러 가는 집이에요. 집의 일상적 일에서 벗어나 가족 모두 내일은 없다는 마음으로 놉니다.(웃음) 아파트는 아이들의 생활에 모두 맞춰져 있다면, 이곳은 가족 전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언제든지 쉬러 갈 집이 또 하나 있다는 것이 큰 안정감을 주고, 내가 원하는 공간에 머무를 수 있다는 점에서 삶의 질이 정말 좋아졌어요. 가족들이 함께 지내는 시간도 평소보다 더 많아졌고요. 아이들이 자랄수록 한데 모이게 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물리적으로라도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이곳이 더욱 소중합니다. 온 가족이 언제든 놀러 갈 수 있게 비워둔 별장으로 삼고 싶어요.” 지은 사람 이야기 건축가 조병수 뜻을 함께한 이는 건축가 조병수다. 땅의 장소성을 지키는 건축물을 지어온 건축가는 가족의 든든한 바탕이 되어줄 집을 설계했고, 조병수건축연구소 윤혜진 팀장과 조경 디자이너 전용성, 공정건설 고찬욱 소장은 이를 실재하는 형태로 구현해냈다. 제주에서 자라 이제는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는 가족의 생활에 맞춘 가구를 더했다. “산방산이 바라다보이는 모습이 정말 듬직했고, 반대편의 들판과 멀리 언뜻 보이는 바다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조망에 대응하면서도 뜨거운 제주 햇살과 바람을 막아줄 방법으로 생각한 것이 땅에서 이어지는 기울어진 판이었어요. 그렇게 경사 지붕 집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조병수 소장의 소개에 따르면 이 지붕은 ‘산방산에서 이어지는 땅의 흐름을 잇고, 품고, 또 흘려보내며 이 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그 장소성을 경험하고 모색하는 요소’다. 그리고 그 지붕 아래에 움막처럼 가족의 집이 있다. 1640㎡ 규모의 대지에서 집이 차지하는 면적은 불과 250㎡ 정도. 넓은 정원과 텃밭, 수영장과 발을 담그는 나지막한 풀, 캠핑 존까지 모두 실외에 자리한다. 텃밭을 가꾸고, 수영을 하거나, 옹기종기 둘러앉아 모닥불을 피우는 등 야외 활동은 가족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이자 제주의 땅과 교감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실내 또한 함께 지내는 집에 초점을 맞췄다. 각자의 침실은 최소한의 크기로 프라이빗하게 배치하고, 함께 이용하는 거실과 다이닝 및 주방은 하나로 이어진 넓은 공간으로 계획했다. “ 땅이 지닌 환경을 가장 잘 경험하고 살리는 집입니다. 아이들이 자연과 접하고 몸으로 경험하며 자라는 집, 그래서 커서도 기억에 남을 순간을 만들어줄 곳을 지으려 했습니다.” 바탕처럼 만든 집을 채우는 것은 디자이너의 가구. 김한균 대표와 친한 사이인 팀바이럴스 문승지 대표가 제주에 이사 온 것을 기념하며 선물한 것이라고. 그는 제주스러운 가구를 만들어달라는 김한균 대표의 요청에 맞춰 소파와 테이블, 체어를 비롯해 침대, 야외 벤치까지 집 안팎의 모든 가구를 직접 디자인했다. “조병수 선생님의 설계를 보고 강한 형태로 존재감을 과시하기보다는 힘을 빼고 디자인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본 구조를 잘 지켜서 편안하게 오래 쓸 수 있는 가구가 핵심이었습니다. 또 특정한 형태보다는 제주 고유의 분재인 석부작이나 정낭 등 이곳의 문화를 녹여냈습니다.” 사계아방에서는 아이들만 아니라 어른들의 시간도 한결 천천히 흘러간다. 이곳에서만은 늘 함께인 가족, 그들을 넉넉히 품어주는 제주의 자연, 그리고 이제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버린 집과 함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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