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독과 고양이가 사는 집

나지막한 주택과 학교, 흥미로운 카페와 레스토랑이 조화롭게 모여 있는 연희동. 이 호젓하고 재미난 동네에 음악감독 최정인의 집이 자리 잡았다. 집이자 작업실로 쓰는 이곳을 고친 이는 시몬조 디렉터 조남인.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단정하고 균형 잡힌 공간 위로 최정인 감독의 일과 일상이 음악처럼 흐른다.

사는 사람

음악감독 최정인과 고양이 룽지

음악감독 최정인은 드라마와 영화의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 겸 디렉터다. 국내 최고 영화·드라마 음악감독으로 손꼽히는 김태성 감독에게 음악을 배우고 일한 지 10년째. 이 동네에서 살며 주옥같은 작품을 만들어왔고, 올해는 단독 작업인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로 데뷔 무대를 치렀다.

“저에게 집은 단순히 생활공간을 넘어 제 음악과 작업의 일부로 존재해요. 머무는 장소가 바뀌면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그 변화가 작업에도 스며들죠. 그만큼 제게 영감을 주는 곳이에요. 제 소유의 집이 아님에도 인테리어를 한 것은 제가 그런 공간에 있고 싶기 때문이었어요.”

생애 처음으로 인테리어를 결심한 그는 고양이 룽지와 함께 살며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밤에도 음악 작업을 해도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을 장소를 찾다 보니 일반적인 주거지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주택이지만 주택 같지 않은 지금의 집을 발견했다. 양방향으로 커다란 창이 나 있어 빛이 잘 들고, 한쪽은 학교 운동장, 다른 한쪽은 도로를 접해 주변이 탁 트여 있었다. 시끌벅적한 연남동에서 한 켜 들어와 잔잔하고 조용한 이곳의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공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가 머릿속에 바로 그려져 ‘여기다’ 싶었다고 한다.

“저와 닮은 집에서 제가 좋아하는 제 모습을 더욱 찾아가고 있어요”

이 집에 머무르게 된 뒤 찾아온 변화에 대해 최정인 감독은 저렇게 말한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햇빛을 좋아하는 고양이에게도 잘 어울리는 이 공간에서 그는 더욱 긍정적인 변화를 마주하고 있었다.

전문가

조남인 디렉터

음악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햇빛을 좋아하는 고양이에게도 잘 어울리는 이곳을 고치는 작업은 디자인 스튜디오 시몬조simonecho의 디렉터 조남인이 맡았다. 연희동에 오랫동안 거주하며 동네를 잘 이해하고, 최정인 감독의 마음에 쏙 드는 포트폴리오를 갖춘 데다 마찬가지로 고양이 집사인 그는 여러모로 최적의 파트너였다.

“주거 공간을 작업할 때는 집주인의 인상을 닮은 집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감독님이 ‘제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시면 좋겠어요’ 하시면서 플레이리스트를 주셨어요. ‘작업과 휴식의 밸런스가 잘 맞는 공간이면 좋겠다. 여기로 이사 오면서 삶이 좀 더 풍성해지면 좋겠다’는 말씀도 해주셨고요. 그런 조각들을 모아가며 감독님의 인상을 닮은 군더더기 없고 깨끗한 공간을 작업했습니다.”

그가 작업한 집은 본래 다세대주택으로 지었지만, 상업시설과 사무실로 쓰이며 집인 듯 아닌 듯한 모습이 특징이었다. 다시 원래 용도로 되돌려야 했기에 최소한으로 고치는 것이 유리했다. 조남인은 이 모호한 공간에 클라이언트의 일과 일상이 공존하도록 녹여 넣으며 독특한 공간감을 완성했다고 전한다.

나선형 외부 철제 계단을 올라 문을 열면 등장하는 집의 첫인상은 단정한 캔버스다. 현관에 들어서면 연회색 바닥 위로 단정하게 비워둔 새하얀 벽이 맞아준다. 왼편에는 작업 공간, 오른편에는 주방과 다이닝 공간이 있고, 벽 안쪽에는 침실과 욕실이 자리한다. 현관의 개념이 없던 입구는 벽 대신 낮은 수납 가구로 통로처럼 구획해 원룸 형태의 공간에 버퍼를 주면서도 답답하지 않게 했다. 벽을 새로 세우지 않고 집과 작업실을 하나의 열린 장소로 구성해 풍부한 채광을 살린 것도 인상적이다.

바닥은 매트한 에폭시로 시공해 경계 없이 하나의 장소처럼 느껴지도록 했으며, 천장은 침실과 주방을 제외하고는 구조체를 그대로 노출해 거친 느낌을 살렸다. 철제 보(H빔)를 그대로 드러내고 전선 배선도 스틸 파이프로 정리해 날것의 느낌을 강조한 덕분에 집이면서도 집 같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제가 디자인한 요소를 클라이언트가 다음 공간에도 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업하다 보니 가구 위주의 공간을 계획하게 되었어요. 여기에 설치한 가구와 조명도 전부 떼어 갈 수 있죠.”

그는 공간과 어울리는 무언가를 만들고 조합하는 편집 기술을 자신의 고유한 언어라 여기며, 기성품보다는 직접 디자인한 요소를 더 선호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구는 단정하고 균형 잡힌 공간에 새로운 인상을 더하면서, 자칫 단조롭게 보일 수 있는 공간에 생동감을 더해주었다.

레드오크 원목으로 제작한 다이닝 테이블과 체어, 채도가 낮은 파스텔 톤의 선반, 새틴 글라스와 아연으로 디자인한 조명은 담백하게 마감된 공간에 적절한 캐릭터를 심었다. 특히 조명은 자연 채광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꼭 필요한 위치에만 간접조명을 설치해 밤에는 은은한 빛으로, 낮에는 밝은 햇살과 어울려 공간의 균형을 잡아주는 존재가 되었다.

전문가 소개

조남인 스튜디오 시몬조

조남인은 실내 건축을 기반으로 공간과 가구, 오브제 작업을 전개하는 스튜디오 시몬조의 디렉터다. 딱딱하고 복잡한 창작의 경계를 허무는 방법을 구상하는 창작자로서, 형태보다는 재료의 본질을 탐구하고 모든 창작물에 간결함의 가치를 추구한다. 대표 작업으로는 한남동 아장스망 오피스, 서교동 디자인 스튜디오 더블디, 한남동 모네아트워크, 온양민속박물관 전시 등이 있다. 현재는 가구와 오브제 프로젝트를 하며 작가 활동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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