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취향이 담긴 145㎡ 아파트

가족의 취향을 공간 디자이너인 아들의 감각으로 풀어냈다. 첫 단독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정태현 씨 가족의 145㎡ 아파트.

사는 사람 이야기

정태현 씨와 부모님

판교 운중동의 한 아파트. 구름에 싸인 산 아래 마을이라는 의미답게 고즈넉한 산세가 창문 가득 펼쳐진다. 세 가족의 드림 하우스인 이번 프로젝트는 정태현 디자이너가 설계했다. 그는 태오양 스튜디오의 직원이자, 부모님과 함께 이 집에 거주하는 아들이다. 첫 단독 프로젝트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디자인한 셈이다.

“공간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이전까지 제 취향을 집에 투영하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이전 집은 부모님의 취향에 맞춰 리모델링을 했는데, 세 가족 모두 취향이 뚜렷한지라 제가 좋아하는 소품이나 가구는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저도 다양하게 시도해봤지만 결국 포기하고 살았죠.”

하지만 기회는 갑자기 찾아왔다. 약 10년 만의 이사. 처음에는 태현 씨가 설계를 맡을 생각이 없었지만, 여러 업체와 미팅을 거듭하며 가족 모두가 “직접 하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고, 결국 태현 씨가 디자인 전권을 쥐게 됐다.

가장 큰 난관은 가구였다. 풍경을 돋보이게 하려면 미니멀한 가구가 필요했지만, 부모님의 취향은 달랐다. 아버지는 다크 우드를 활용한 중후한 스타일, 어머니는 서양 앤티크 가구를 좋아했다. 결국 이전 집에서 쓰던 일부 가구, 예를 들어 앤티크 장식장과 검은색 소파 등을 거실에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

“가장 힘들기도 했지만,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어요. 전혀 다른 스타일을 하나로 묶어내는 방법을 고민했고, 나중에 보니 부모님의 취향이 오히려 이 집을 더 ‘우리 가족의 집’답게 만들어주더라고요.”

어머니의 앤티크 장식장은 외할아버지가 모은 소장품을 진열하기에 좋았고, 아버지가 원했던 따뜻한 조명의 색온도는 우드 마감재와 잘 어우러져 공간을 더욱 온화하게 했다.

고친 사람 이야기

정태현 디자이너

정태현 디자이너는 터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운중동의 의미가 ‘산과 구름에 싸인 마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그에 걸맞은 거실 뷰가 떠올랐고, 이후로 고민의 방향은 뷰를 가장 강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바뀌었다.

“서양 건축은 건물이 먼저 보이는 반면, 한국 건축은 풍경을 먼저 즐긴다는 점이 떠올랐어요. 누마루나 대청마루처럼 자연을 가까이 두는 요소들이 많듯, 우리 집에서도 이런 경험을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집의 구조는 현관 중문을 열면 각각 방 네 개로 연결되는 복도가 이어지고 그 끝에 거실과 주방이 자리한다. 즉, 중문을 열기만 해도 거실이 바로 보이는 구조로, 집에 들어오자마자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도록 복도 라인을 일자로 다듬었다. 자연과 더 가까워지는 장치로 거실 발코니도 확장했다. 그 두 곳을 제외하고는 마감과 스타일링으로만 연출했다. 이때 가장 신경 쓴 점은 장식 요소를 제거하는 일. 먼저 철마다 다른 색으로 물드는 산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서는 뉴트럴한 톤&매너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주 마감재로는 나무, 그중에서도 오크를 선택했다.

태현 씨의 침실은 본인의 취향을 마음껏 담아낼 수 있었다. 침대는 문을 등지고 창을 바라보도록 배치했으며, 이는 파크하얏트 호텔에서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풍경을 볼 수 있도록 고려했다. 침대 뒤에는 낮은 수납장을 설치해 침대가 시야의 중심이 되지 않게 했으며, 천장까지 원목 마루를 이어붙여 자연의 물성을 강조했다. 벽면에는 오크 수납장을 제작해, 그간 모은 공예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하고, 깊이를 650mm로 설계해 실생활의 짐도 충분히 보관하도록 했다.

약 3개월간의 여정을 끝낸 태현 씨는 이번 작업이 가장 험난하면서도 보람찼다고 회고한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컨펌해줄 사람이 없었던 것. 늘 디자인을 논의할 동료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려야 했기에 더욱 고민이 많았다. 그럼에도 완성된 결과에 대한 만족도는 높다. “패션에 비유하자면, 집은 손이 자주 가는 옷과 같다”는 태현 씨는 “편안한 파자마 같은 집을 만들었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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