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까지 완벽한 정리 정돈을 미덕으로 삼는 집주인 강성자 씨와 라이프스타일 및 살림살이를 가장 적절한 동선 위에 아름답게 꾸려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심희진. 두 사람이 함께 고친 개포동의 170m² 아파트는 ‘생활을 디자인하면 행복이 더 커진다’는 〈행복〉의 오래된 슬로건을 꼭 닮아 있었다.
사는 사람 이야기
생활에 맞춰 집의 규칙을 다시 쓰다
이 집의 탄생에는 강성자 씨 부부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이 많은 기여를 했다. 이곳의 주 생활자는 서울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그의 남편이다. 강성자 씨는 평일을 또 하나의 집인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주택에서 지낸다. 산속 자그마한 통나무집에서 꽃을 가꾸거나 취미인 바느질을 하고, 친구들과 골프를 치며 머물다가 주말이면 서울로 돌아와 남편과 시간을 보낸다.
그는 전에 살던 도곡동 아파트를 떠나 개포동으로 이사하면서 남편이 혼자서도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자신은 조금 더 자유롭게 살아보기로 결심했다(자유를 찾아 준비했다는 말이 일견 섭섭하게 들릴 수 있지만, 두 사람은 ‘떨어진 시간을 통해 더 돈독해질 줄 아는’ 로맨티스트 부부다). 아파트는 새로 지은 집답게 자재도 튼튼하고, 평면도 짜임새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새롭게 옮기는 김에 부부의 생활과 취향에 완벽히 부합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두 사람이 같은 집을 사용하지만 머무는 시간도, 생활하는 방식도 다르다는 사실 또한 맞춤집에 대한 의지에 불을 지폈다. 그 과정에서 인테리어의 핵심 주제로 떠오른 것이 ‘동선과 수납’이었다.

꾸민 사람 이야기
트위니 심희진 대표는 눈맛과 손맛이 뛰어난 디자이너다. 집주인의 생활 습관과 살림살이 하나까지 면밀하게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아름다운 포인트를 포착하고, 이를 효율적이면서도 보기 좋은 공간으로 풀어낸다. 강성자 씨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새롭게 고친 이번 프로젝트는 그의 이러한 능력이 특히 빛을 발했다. 심희진 디자이너가 이 집에서 발견한 포인트는 ‘시간과 기억이 깃든 수많은 살림살이’였다.
“인테리어하기로 결정하고서 선생님이 원래 살던 집을 보러 갔는데, 정말 주옥같은 물건이 많았어요. 철두철미하게 정리한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고요. 그런데 모두 수납장 안에 감추어져 있었어요. 그때 말씀드린 것이 ‘아휴, 이런 걸 왜 감춰놓고 사세요. 이렇게 좋은 건 보여주고 사셔야죠’ 였어요. 그때 제 눈에 담긴 장면들을 잘 꺼내고, 잘 보이도록 만든 곳이 이 집이에요.” 강성자 씨는 비유하자면 생활 물건 컬렉터이다. 무언가에 마음이 가면 이것도 써보고 저것도 써보고 모으기도 하면서 끝장을 본다. 일례로 심희진 대표가 가장 놀랐다는 밥솥 컬렉션은 크기와 소재별로 수십 개가 있다. “밥솥에 관심이 생기면 하나로는 안 되는 사람인 거예요. 여기다가도 해 먹어보고 저기에도 해먹어보고 싶고, 오래 곁에 두고 사용하면서 즐거워하시는 거죠.” 심희진 대표는 자신이 발견한, 그러나 예전 집에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던 강성자 씨의 숨은 면모를 끌어내고자 했다. 그가 이 집의 별명을 ‘수납에 미친 집’이라 소개한 이유다.



심희진 대표는 일반 아파트의 공식을 따르는 대신 부부의 생활을 고려해 실의 쓰임부터 다시 정했다. 주방과 거실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남편의 생활공간을, 다른 한쪽에는 아내의 공간을 배치했고, 필요하지 않은 기능은 과감히 덜어냈다. 이를테면 욕실의 샤워 부스 같은 것. “워낙 커뮤니티 시설이 잘되어 있는 아파트라 한 걸음만 나가면 헬스장이나 사우나 등 필요한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어요. 같은 기능을 집 안에 또 둘 이유가 없었죠. 대신 그 자리에 넉넉한 화장대 공간을 만드는 식으로 부부에게 좀 더 필요한 기능을 고민했습니다.”
이 집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공간은 철저히 쓸모에 맞춰 계획되었다. 방 하나씩을 아내와 남편 각각을 위한 준비 공간으로 온전히 할애한 것도 마찬가지다. 강성자 씨의 침실 옆에는 오도 코펜하겐의 고즈넉한 수납장과 핀율 체어가 있는 작은 준비 스테이션을 만들었고, 남편의 침실 옆에는 오로지 출근 준비를 위한 용도로 옷을 갈아입고 소지품을 챙겨 나가는 방을 마련했다. “아무리 정리를 잘하더라도 살다 보면 물건을 잠시 꺼내두기도 하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면서 바닥에 두기도 하잖아요. 그렇더라도 늘 정돈된 모습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적절한 예비 공간을 만들었어요.”


수납왕과 정리왕이 만나 이루어낸 것들
잘 짜인 동선을 완성하는 것은 적재적소에 놓인 수납이다. 현관의 몬타나 수납장에는 운동이나 사우나를 하러 나갈 때 바로 들고 갈 수 있도록 타월이 용도별로 정리돼 있다. 주방은 아침에는 가볍게 커피를 마시고, 퇴근한 저녁에는 와인 한잔을 즐기는 남편의 일과에 맞춰 커피 존과 와인 존을 나눈 후 필요한 기물과 곁들이면 좋을 다과까지 함께 정리해두었다. 출근 준비 공간 역시 마찬가지. 다림질 존은 스탠딩 다리미 바로 위에 와이셔츠 길이에 맞춘 행어를 설치해 다림질한 옷을 잠시 걸어두었다가 한꺼번에 바로 옆 옷장으로 옮겨 정리할 수 있다. 옷장 옆에 놓인 트롤리는 손수건이나 마스크처럼 출근 전에 챙겨야 할 작은 휴대 아이템을 보관하는 장소다. 공간을 촘촘하게 계획한 덕분에 수납 가구와 물건의 위치만 따라가도 아침에 다림질된 옷을 꺼내 입고, 소지품을 챙겨 집을 나서는 남편의 일상이 그려질 정도다. 이 밖에도 심희진 대표는 무인양품 수납함에 맞춰 칸을 하나하나 짠 다음 어울리는 라벨링 기계까지 찾아 완벽하게 정리한 팬트리를 만들었고, 욕실 수납장은 수건과 휴지 크기까지 계산해 딱 맞게 들어가도록 설계했다. 강성자 씨는 특유의 정리 정돈 능력을 발휘해 심희진 대표가 만든 틀을 자신만의 질서로 채웠다. 그중에서도 두 사람의 협업이 무엇보다 빛을 발한 곳은 ‘보이는 수납’. 이 집의 보이는 수납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남편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좋아하는 물건을 바라보며 사는 즐거움을 되찾는 일이었다.



심희진 대표는 주방의 그릇장을 문으로 막는 대신 무지주 선반으로 예쁘게 장을 짜고, 어울리는 벽지로 내부를 마감해 그릇과 가구가 하나의 풍경이 되도록 했다. 거실과 주방 사이에 놓인 뮬러 반 세베렌Muller Van Severen의 캐비닛은 물건을 더욱 적극적으로 감상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 금속의 물성을 좋아하는 집주인의 취향에 맞춰 안이 들여다보이는 와이어 장을 두고, 마음이 가는 물건을 소재별로 나누어 배치했다. 이곳은 강성자 씨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물건이 나와 있으면 지나가다가도 ‘아, 예쁘다’ 하며 보고, ‘이건 그때 여행하다가 샀었지’ 하면서 기억을 되새기게 되잖아요. 예전에는 적절한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다 보니 숨겨두었는데, 이렇게 잘 보여줄 무대가 마련되면서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좋은 순간이 늘어나요. 여기 꽃무늬가 그려진 에르메스 잔은 젊은 시절 아끼고 아껴서 사 모은 거예요. 깨질까봐 건배도 제대로 못했어요.(웃음) 그런 마음으로 샀는데 아직까지 옆에 잘 있구나, 기특하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심희진 대표가 닫혀 있던 수납장에서 꺼내놓은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거기에 깃든 시간까지 일상의 풍경 속으로 불러냈다. 그는 이 집을 완성하며 마치 한 사람의 삶을 함께 리셋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소회를 들려주었다. “원래도 모든 물건에 자기 자리를 만들어놓고 사시던 분이에요. 다만 이전 집에서는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죠. 물건이 잘 보이는 가구를 들이고,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자리를 만들어드리고 싶었어요. 더 중요한 건 60대의 나이에 모두 버리고 새로 바꾼다는 결심이었어요.
정말 쉽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도전을 했고, 그 결과 탄생한 집에서 원래 영위하던 생활 방식이 훨씬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됐습니다. 마치 그동안 감춰져 있던 인생의 스위치를 켠 것처럼요.” 지금의 삶에 맞춰 공간의 쓰임을 다시 정하고, 하루의 동선을 간결하게 만들고, 좋아하는 것을 더 자주 바라볼 수 있도록 사물의 자리를 새롭게 마련한 집. 이 집에서 새롭게 자리를 찾은 것은 물건만이 아닐 것이다. 오래 이어온 습관과 달라진 생활,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과 각자의 시간이 제자리를 찾은 강성자 씨의 집에서 수납은 생활을 아름답게 편집하는 가장 구체적 방법이 되었다.




수납 고수의 남다른 아이템
정리의 달인 집주인과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만나 보기에도, 쓰기에도 좋은 새로운 수납 방식이 탄생했다. 강성자 씨의 집에서 주목한 수납 아이템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1 침대 옆 자석 보드
침대 옆 손이 닿는 곳에 자석 보드를 달아두면 메모를 남기기에도 좋지만, 충전기 선이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밟히지 않게 걸어둘 수 있어 깔끔하다. 제품은 코토나디자인Kotonadesign의 노트 보드. 13만 4천 원, 루밍.
2 수거함을 쓰레기통으로
캐비닛을 닮은 수거함은 쓰레기도 가려주고, 버리기도 간편해 쓰레기통으로 쓰고 있다. 폭이 얇아 복도에 두어도 동선을 방해하지 않는다. 제품은 덜턴Dulton의 2단 분리수거함. 95만 원, 스테이에이치.
3 화병을 국자 꽂이로
때로는 상상력이 신박한 정리의 방식이 된다. 주방 도구를 보관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구입한 꽃병은 국자와 조리 도구를 꽂는 훌륭한 장소가 되었다. 제품은 로낭&에르완 부홀렉이 디자인한 누아지 메탈리크Nuage Metalique. 아노다이징anodizing 알루미늄 소재라 내구성도 뛰어나다. 33만 3천 원, 이노메싸.
4 기내용 트롤리를 손수건 보관함으로
폭이 좁으면서도 수납량이 많은 기내용 트롤리는 손수건이나 바느질 도구 등 작은 물건을 종류별로 나눠 보관하기에 제격이다. 위트 있는 디자인도 장점. 제품은 아비아틱 숍Aviatik Shop의 트롤리 스위스 에어 에디션. 3백47만 원, 루밍.
5 신발 상자도 수납 방식이 될 수 있다
규격이 비슷한 신발 상자는 내용물을 구분하기 쉽고, 크기도 일정해 의외로 요긴한 수납 도구다. 상자 크기에 맞춰 장을 짜고 여러 개를 한데 모으면 반복되는 형태 자체에서 예상 밖의 정돈미도 발견할 수 있다.
전문가
심희진 | 트위니
인테리어 디자이너 심희진은 매거진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다 가구와 뷰티 브랜드의 리테일 공간, 주거 공간의 인테리어디자인으로 업역을 넓혔다. 현재는 인테리어디자인 트위니의 대표로, 렌털 스튜디오 픽시즈를 함께 운영하며 오래 머무를 따뜻하고 편안한 집을 만들고 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