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 사이인 두 부부가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Puglia에 세컨드 하우스를 함께 마련했다. 25년간 비어 있던 19세기 팔라초를 되살린 빌라 콜루치Villa Colucci다.
고친 사람 이야기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이트리아 계곡의 완만한 언덕 위에 자리한 셀바 디 파사노Selva di Fasano. 이곳에는 콜루치 가문이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던 19세기 팔라초, 빌라 콜루치가 자리한다. 약 2만㎡ 에 달하는 울창한 올리브 숲이 고즈넉한 저택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이 집을 함께 완성한 주인공은 덴마크 디자인 브랜드 헤이HAY를 이끄는 메테Mette와 롤프 헤이Rolf Hay 부부, 영화감독 마르틴 베르네르Martin Werner와 컬렉터 바르바라 베르네르Barbara Hasted Werner 부부다. 코펜하겐에서 이웃으로 만난 두 가족은 오랜 시간 취향과 일상을 나누며 단단한 우정을 쌓아왔다. 특히 메테와 바르바라는 반려견 컬렉션 ‘헤이 도그스HAY Dogs’를 함께 기획했을 만큼 서로의 감각을 깊이 이해하는 친구이자 동료다.
이들이 빌라 콜루치와 인연을 맺은 것은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풀리아에 전통 농가 형태의 별장 마세리아Masseria를 소유하고 있던 베르네르 부부는 새로운 세컨드 하우스 터로 셀바 디 파사노를 일찌감치 눈여겨봤다. 한여름에도 쾌적한 고지대의 기후, 짙푸른 숲과 너른 정원을 오롯이 누릴 수 있는 환경, 그러면서도 동네 정육점과 빵집, 바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입지 때문이었다. 바르바라와 마르틴은 이곳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연 속에서 한적하고 프라이빗한 휴식을 누리면서도 자동차 없이 동네의 일상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저희에게는 완벽했어요.”
팬데믹이 한창이던 당시, 네 사람은 현장을 직접 둘러보지 못한 채 영상만 보고 저택을 매입했다. 이후 풀리아를 찾아 마침내 집과 정원을 두 눈으로 마주한 메테와 롤프는 화면 너머로 짐작하던 것보다 훨씬 강렬한 풍경에 매료되었다. “영상으로 집의 구조는 충분히 파악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정원은 상상과 전혀 달랐어요. 25년 동안 아무도 살지 않아 마치 동화 속 ‘잠자는 숲속의 성’ 같았죠. 저택에 들어서는 순간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긴장이 풀리는 특별한 기운도 느꼈고요.”

새롭게 만드는 대신, 남겨두는 것
빌라 콜루치를 매입한 네 사람이 가장 먼저 합의한 원칙은 ‘얼마나 바꿀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보존할 것인가’였다. 메테와 롤프는 복원의 방향을 분명히 했다. 이 원칙에 따라 저택의 바닥은 모두 기존 것을 유지했고, 집 전체에서 교체한 창문도 단 두 개뿐이었다. 일부 벽면은 새로페인트칠하는 대신 오랜 세월 쌓인 먼지와 얼룩만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바르바라와 마르틴은 본래의 색과 소재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현대적 기능을 더하고자 했다. 오래된 타일 바닥을 온전히 남기기 위해 전기 배선은 벽 안에 매립하지 않고 표면을 따라 노출했으며, 냉난방 설비는 천장과 황동 박스 안에 정교하게 숨겼다. 오늘날의 편의를 갖추되 유서 깊은 건축물의 결을 해치지 않으려는 세심한 선택이었다.
복원 작업은 지역 건축가 프란체스코 마스트로로사Francesco Mastrorosa와 함께 했다. 네 사람은 함께 일하기 전부터 그의 작업을 접하며 실력과 감각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펼쳐온 그가 빌라 콜루치의 복원에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낡은 문과 셔터, 높은 천장, 시멘트 타일의 무늬 등 팔라초가 간직한 오리지널 디테일은 마스트로로사와 지역 장인들의 긴밀한 협업을 거쳐 다시 생기를 얻었다.
478㎡ 규모의 본채에는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침실 10개와 욕실, 넓은 살롱과 여러 다이닝룸, 볼룸이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위층에는 프라이빗 바가 자리하고, 야외에는 수영장과 선인장 테라스 두 곳이 펼쳐진다. 올리브 숲 깊숙한 곳에는 풀리아의 전통 석조 가옥 트룰로trullo가 독립된 은신처처럼 숨어 있다.
바르바라와 마르틴은 옛 마구간을 이 집의 심장인 주방으로 바꾸는 일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말한다. “처음 집을 보았을 때부터 본채에 붙어 있는 옛 마구간을 주방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침실 10개와 웅장한 다이닝룸 및 볼룸이 있는 대저택인 만큼 모두가 자연스럽게 모일 중심 공간이 필요했죠.”
풀리아의 일상에서 발견한 물건도 집 안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네 사람은 거의 매주 일요일 지역 벼룩시장을 찾아 빈티지 가구와 종교적 오브제를 수집했다. 로컬 시장에서 찾아낸 이름 없는 물건들은 로낭&에르완 부홀렉과 뮬러 반 세베렌의 작품, 조 폰티의 의자, 피터 도이 그의 회화 사이에 격의 없이 놓였다. 메테와 롤프는 이처럼 시대와 출처가 다른 물건이 한데 섞일 때 공간에 흥미로운 에너지가 생겨나고, 비로소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집이 된다고 말한다.
헤이 창립자의 집인 만큼 곳곳에서 브랜드의 제품을 발견할 수 있지만, 메테와 롤프는 빌라가 헤이의 쇼룸처럼 보이는 것을 경계했다. “헤이는 특정한 스타일을 공간에 강요하는 브랜드가 아니에요. 우리가 만든 디자인이 전혀 다른 취향과 맥락 속으로 들어가 각자의 일상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쓰이는 모습을 더 좋아합니다.”
그들의 말처럼 빌라 콜루치의 헤이 가구는 빛바랜 타일 위,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이름 없는 가구 곁에 무심한 듯 놓여 자연스러운 풍경의 일부가 된다.




사는 사람 이야기
코펜하겐과는 다른 속도로 사는 시간
네 사람이 빌라 콜루치를 찾는 일정에는 정해진 패턴이 없다. 모두 함께 모일 때도, 각자 머물 때도 있으며, 체류 기간 역시 유동적이다. 바쁜 일정을 보내면서도 가능한 한 자주 이곳을 찾으려 한다는 점만은 같다. 빌라에 도착하는 순간, 이들의 일상은 코펜하겐에서와 전혀 다른 느린 리듬으로 흘러간다.
아침이면 롤프와 마르틴은 함께 운동하러 나선다. 돌아오는 길에는 시장에 들러 생선과 채소, 고기를 산다. 사온 식재료로 느긋하게 요리하고, 틈날 때면 네 사람 모두 올리브나무 사이에 자리한 코트에서 테니스를 즐긴다. 메테와 롤프는 이러한 풀리아의 일상이 ‘단순함의 미학’을 일깨워준다고 말한다. “덴마크에서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리듬이에요. 이곳에서는 어떤 것도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만들지 않죠. 중요하지 않은 일까지 고민하며 스트레스받기 쉬운 세상에서 조금 덜어내고 단순하게 사는 일이 오히려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풀리아의 풍요로운 식문화에 매료된 메테와 롤프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와인으로 이어졌다. 과거 빌라의 대지에 포도밭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현지 와인 협동조합과 손잡고 ‘헤이베르네르Hay-Werner’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와인을 만드는 일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들여오는 일이 아니었다. 한때 이 땅에 존재하던 포도밭의 역사를 오늘날의 방식으로 이어가는 작업에 가까웠다. 오래된 팔라초를 대하던 태도와 꼭 닮은 접근이다.



두 가족의 오붓한 휴식을 위해 마련한 빌라 콜루치는 이제 더 많은 이에게 문을 열고 있다. 외부 게스트도 건물 전체를 주 단위로 빌려 이곳에 머물 수 있다. 바르바라와 마르틴은 방문객 역시 자신들이 이곳에서 보내는 것과 같은 편안하고 영감이 깃든 날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하우스 매니저를 중심으로 정원과 건물을 돌보는 현지 팀을 차근차근 꾸리는 한편, 지역 셰프와 와인메이커와도 관계를 쌓아가고 있다. 아름다운 집을 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풀리아의 음식과 예술, 이 지역 특유의 환대까지 온전히 경험하게 하려는 것이다. 두 가족이 머물고, 친구와 손님이 오갈 때마다 새로운 물건과 이야기가 더해진다. 25년간 사람의 발길이 끊겼던 팔라초는 그렇게 다시 누군가의 일상이 이어지는 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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