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열, 장식을 넘어 공간의 쓰임을 구성하는 원칙

빈티지 가구 컬렉터 이종명

직접 컬렉팅한 1950년대 바우하우스 가구들이 모여 풍경을 만들어내는 mk2 이종명 대표의 집.

빈티지 가구 숍 mk2를 운영하는 이종명 대표의 집은 가구로 채운 거대한 수납장을 연상시킨다. 최소한의 벽과 문으로 이룬 공간에서 그는 자신만의 규칙대로 가구를 배열하고 서로 관계를 만들어가며 매일 조금씩 다른 집을 누린다.

사는 사람 이야기

한적한 강가 풍경을 지나 양평에서도 비교적 번화한 동네로 접어들면 회색빛 오각형 건물 한 채가 불쑥 나타난다. 별다른 치장이 없는 노출 콘크리트 건물은 소란한 주변과 달리 담백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서면 새로운 장면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작품 같은 가구와 드높은 천장, 원형 회전 계단이 어우러진 이곳은 이종명 대표의 빈티지 가구 컬렉션을 만날 수 있는 mk2 쇼룸이자 그의 집이다. 이종명 대표는 사진을 공부하러 떠난 독일에서 바우하우스 가구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최소한의 재료와 물성으로 기능을 구현하고 불필요한 것은 모두 덜어낸 가구는 그 자체로도 아름다웠지만, 탄생 배경과 그 속에 담긴 디자이너의 의도를 알아가는 일은 더욱 흥미로웠다. 한국에 돌아온 뒤 친구들의 부탁으로 유럽의 재미난 빈티지 가구를 하나둘 구입해 들여오며 컬렉팅을 시작한 것이 벌써 20여년 전. 혼자 즐기던 일은 어느새 업이 되었고, mk2라는 이름이 서서히 알려지면서 컬렉터이자 기획자로 살아가는 지금에 이르렀다.

여느 집이라면 벽에 붙어 있을 소파가 뒷모습을 드러내며 거실의 가장 중심에 있다. 가구를 배열하는 이종명 대표의 방식이 드러나는 부분.
여느 집이라면 벽에 붙어 있을 소파가 뒷모습을 드러내며 거실의 가장 중심에 있다. 가구를 배열하는 이종명 대표의 방식이 드러나는 부분.

“저는 근본적으로 가구를 파는 사람이기보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결국 다양한 의자를 만나보고 직접 쓰면서 그 재미를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니까요.” 그는 대부분의 빈티지 가구를 직접 구입하고, 마치 반려동물을 입양하듯 그전의 삶을 묻는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누가 사용했는지, 이전 주인에게는 어떤 존재였는지…. 책에 기록된 디자인 역사만큼이나 한 물건이 지나온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들여온 가구는 창고 어딘가에 뒀다가 파는 대신 가까이 두고 직접 써보기도 한다. 빈티지 가구는 그 자체로 이미 유일무이한 존재이지만, 그는 자신이 체화한 이야기를 더해 거기에 숨을 불어넣는다. 이종명 대표에게 가구는 소유하는 대상이기 전에 함께 살아가며 이해하는 존재에 가깝다.

이미경 작가가 디자인한 2층 책상은 ‘보이는 수납’ 그 자체다. 1층 왼쪽 수납장은 31일, 12개월의 일을 가늠할 수 있도록 그 수대로 칸을 나누었다.
이미경 작가가 디자인한 2층 책상은 ‘보이는 수납’ 그 자체다. 1층 왼쪽 수납장은 31일, 12개월의 일을 가늠할 수 있도록 그 수대로 칸을 나누었다.

사람이 아닌 가구를 위해 비워둔 집
이종명 대표와 가구 디자이너 이미경 작가가 사는 집은 쇼룸 3층. ‘private’이라는 노란 메모만 쿨하게 놓인 콘크리트 계단을 마저 오르면 작은 외부 공간 너머로 집이 나타난다. 문도, 벽도, 마감도 최소화한 이곳의 주인공은 앞선 이야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가구’다. 이종명 대표는 지인인 건축가 조병수에게 보여줬을 때 그가 건넨 첫마디를 아직 기억한다. “‘앞에서는 안 보이고 뒤로 돌아가면 보물처럼 가구가 하나씩 보이는 거, 그런 거 원하지?’였어요. 딱 그거였죠. 그래서 조병수 소장에게 설계를 부탁했고, 지금의 건물이 탄생했습니다.”

바우하우스 가구를 중심으로 구성한 덕분에 직선과 단순한 형태가 집의 분위기를 이룬다.
바우하우스 가구를 중심으로 구성한 덕분에 직선과 단순한 형태가 집의 분위기를 이룬다.

건축가가 삼층집에 원하는 구성을 물었을 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 결과 34평 규모의 집은 욕실을 제외하면 문이 없고, 구조상 필요한 벽 외에는 공간을 나누는 벽도 없다. 이곳의 구조와 동선 및 용도는 모두 가구에서 시작된다. 텅 빈 공간에 무언가 하나 놓으면 그것이 구심점이 되어 보이지 않는 관계가 시작되듯, 그는 가장 먼저 놓을 가구를 정하는 것에서 배치를 시작했다. 얇은 검정 스틸 프레임이 상판과 다리까지 간결하게 이어지는 플로렌스 놀의 확장형 테이블을 가장 먼저 택했고, 의자와 소파 및 침대를 오가는 에곤 아이에르만의 데이베드를 비롯해 1950년대 바우하우스를 기점으로 하는 가구가 모였다. 이미경 작가가 전시를 위해 만든 2층 책상도 자리 잡았다. “가장 필요하고 좋아하는 가구가 첫 번째 주인공이 되었어요.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쉬거나 놀 수도 있으며, 여러 역할을 하는 책상이죠. 접었다 펼쳤다 하며 2~6인이 쓸 수 있는데, 그 작동 방식이 아주 간결한 디자인을 통해 드러나서 늘 감탄하는 가구입니다. 거실에 이 책상을 두고 물어봤죠. ‘또 뭘 데리고 오면 되겠니?’” “벽돌아,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라고 묻던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처럼 그는 가구에게 말을 걸며 하나씩 연결 고리를 만들어 나갔다. 가구가 들어서니 벽을 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거실을 중심으로 이미경 작가와 이종명 대표의 공간이 나뉘었다. 여기에 아크릴이나 비닐 등 실험적 소재의 가구가 포인트처럼 하나둘 더해졌다.

헤릿 릿벨트와 찰스&레이 임스 의자가 놓인 수납장은 이종명 대표가 가장 최근에 들인 컬렉션이다. 흑백의 조화와 수수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 구입했다고.
헤릿 릿벨트와 찰스&레이 임스 의자가 놓인 수납장은 이종명 대표가 가장 최근에 들인 컬렉션이다. 흑백의 조화와 수수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 구입했다고.
지금보다 진보적이던 1980년대 불탑의 시스템으로 꾸린 주방.
지금보다 진보적이던 1980년대 불탑의 시스템으로 꾸린 주방.

가구의 배열과 배치로 완성하는 공간 수납장에는 비슷한 물성의 물건을 모아두면 보기 좋다거나, 동선에 맞춰서 두는 등 집주인만의 규칙이 생긴다. 이 집에서 가구를 배열하고 배치하는 데도 이종명 대표만의 원칙이 있었다. 가장 중요하게 고민한 것은 영역성을 만드는 일이었다. 실을 구획하는 문이나 벽이 거의 없는 집에서 어떻게 각 장소의 성격을 만들어낼 것인가? 그는 해답을 가구와 사물에서 찾았다. 이 집에서 ‘보이는 수납’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가구는 공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말해줘요. 잠을 자는 공간에 그릇장도 있고, 우산 꽂이도 있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잖아요. 가구나 사물이 적절한 위치에 보이면 자연스럽게 그 공간의 쓰임을 짐작할 수 있어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되는 거죠.”

또 하나의 법칙은 오버랩이다. 기본적으로 어울리는 것이 가까이 자리하되, 너무 붙어 있지 않게 여러 레이어를 두듯 가구를 배치한다. 한 가구가 여러 시점에서 중복해 보이는 것은 피한다. 가구를 벽에 병풍처럼 늘어놓고 가운데를 넓게 비워두는 익숙한 방식도 그에게는 매력적이지 않다. 사람이 사용할 빈 공간을 확보하기보다 가구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가구는 무심히 놓인 듯 보이지만, 시야가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느 하나가 압도하거나 서로의 존재를 가리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균형을 만든다. 이 집에서 ‘배열’은 장식의 방법이 아니라,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 된다.

이미경 작가의 공간. 폴리카보네이트 시리즈인 파티션과 캐비닛이 포인트이다.
이미경 작가의 공간. 폴리카보네이트 시리즈인 파티션과 캐비닛이 포인트이다.

이종명 대표의 집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것은 그가 사물의 멋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지은 지 6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건축가의 의도를 가리는 마감재나 장치를 많이 덧대지 않았다(커튼조차 달지 않았다). 가구 한 점, 그릇 한 점도 간결하면서 디테일이 살아 있는 것을 고르고, 한번 집에 들이면 정성껏 사용하고 오래 감상하며 산다. “가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다양한 가구를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여건이에요. 아래층 쇼룸에만 내려가도 소스가 무궁무진하죠. 하지만 그래서 정말 마음을 움직이는 최소한의 것만 이곳에 들이면서 자제하며 살게 됩니다.”
그가 정의하는 수납은 ‘취향을 피팅하는 곳’. 무엇이 나와 어울리는지 들여다보고, 직접 사용하며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그런 의미에서 수납을 ‘집’으로 바꾸어도 그에게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저는 늘 메트로폴리탄을 사랑하는 도시인이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서울을 훌쩍 떠나왔는데도 좋아하는 물건을 모아놓고 사니까 그냥 여기가 내 집이 되더라고요. 동네나 지역을 떠나서요.” 그의 집을 집답게 만드는 것은 주소도, 방의 배치도 아니다. 오래 곁에 두며 자신의 것으로 만든 가구와 사물, 그리고 그것의 자리를 끊임없이 조율하며 쌓아가는 관계다.

이종명 대표의 집에서 발견한 독특한 수납 가구 4
20여 년간 빈티지 가구를 수집하고 소개해온 이종명 대표의 집에서 발견한 수납 가구. 탄생 배경부터 쓰임새까지 남다른, 사용하는 재미가 있는 네 가지 가구를 소개한다.

1
소프트라인 시리즈Softline Series 벽걸이 수납장
2
박승혁 작가의 수납 상자
3
빈티지 우산 스탠드
4
폴리카보네이트 캐비닛

1 소프트라인 시리즈Softline Series 벽걸이 수납장
독일 가구 디자이너 오토 차프Otto Zapf가 1970년대에 디자인한 빈티지 모듈러 가구 시스템. 가구 장인이자 제작자이던 아버지와 달리 목재를 다루고 싶지 않던 그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플라스틱으로 가구를 디자인했다. 단단한 판재 대신 유연한 플라스틱 포일을 금속 스냅 단추로 연결해 앞판을 열고 닫으며 물건을 수납할 수 있다.

2 박승혁 작가의 수납 상자
분홍색과 하늘색 스틸로 제작한 모듈형 수납 상자. 평소에는 각각 분리해 사용하다 필요할 때 크기에 맞춰 하나로 모으고, 뚜껑을 닫아 보관할 수 있다. 합친 뒤에는 상부에 물건을 올려 협탁처럼 활용할 수도 있다. 수납과 가구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유연한 오브제.

3 빈티지 우산 스탠드
1960년대 독일에서 제작한 우산 스탠드. 묵직한 붉은색 원형 베이스가 중심을 잡아주고, 흰색으로 도장한 원형 스틸 링 네 개를 살짝 어긋나게 배치했다. 링 한쪽이 열려 있어 사진처럼 물건을 걸어두는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다. 최소한의 선과 색으로 기능을 해결하면서 반복되는 링이 조각적 형태를 만들어 바우하우스 기능주의와 1960년대 팝 디자인 특유의 유쾌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4 폴리카보네이트 캐비닛
1980년대 독일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의 모임인 펜타곤 그룹의 유니크한 작품. 파티션과 서랍장까지 하나의 세트를 이룬다. 이음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폴리카보네이트로 완성했는데, 구조와 디테일이 그대로 드러나는 소재임에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반투명 표면 너머로 수납한 물건의 실루엣만 흐릿하게 드러나는 모습도 매력적이다.

전문가

이종명

이종명 | mk2

빈티지 가구와 디자인 오브제를 소개하는 mk2 이종명 대표. 오랜 시간 쌓아온 안목을 바탕으로 컬렉터이자 기획자로 활동한다. 가구를 주제로 전시를 기획하거나 다양한 공간·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mk2showroom

조병수 | 조병수건축연구소

건축가 조병수는 조병수건축연구소 대표로, 하버드 대학교와 독일 국립대학교 등의 대학에서 설계와 이론을 가르쳤고, 2014년에는 덴마크 오르후스 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미국 건축 잡지 에서 '세계의 선도적 건축가 11인'에 선정된 바 있다. 2023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다. 오는 4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모스카파트너스 베리에이션MoscaPartners Variations 전시를 맡아 작업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