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류승룡이 10년 가까이 가족의 보금자리가 되어준 집을 다시 한번 고쳤다. 다가올 10년을 준비하며 재정비한 187㎡ 아파트는 그동안 이어온 삶의 방식 또한 가다듬는 시작점이 되었다.

사는 사람 이야기
올해 백상예술대상 방송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4천만 배우’에 이어 영화와 방송 부문을 모두 석권한 최초의 배우라는 기록을 새롭게 추가한 배우 류승룡. <무빙>의 초인적 아빠부터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현실적 가장까지. 그가 연기해온 인물들은 주변 어딘가에 있을 법한, 때로는 나 자신일 법한 얼굴로 우리 가까이 다가와 이야기를 건넨다. 그는 그러한 힘을 배우 바깥의 생활에서 얻곤 했다. 홀연히 제주로 떠나 올레길을 걷고, 도예와 목공을 하며 손에 닿는 물성의 감각을 익히고, 작가의 그림과 공예 작품을 가까이 두고 감상하며 그 생각을 살피기도 하면서.


“그동안 많은 일을 하면서 정말 쉼 없이 달려왔어요. 핸드폰이나 컴퓨터도 저장 용량이 얼마 남지 않으면 데이터를 정리하고, 쿠키를 삭제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용량을 늘리기만 해온 거죠.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센서가 오작동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중요한 일을 까먹기도 하고요.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만 우선순위로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도, 루틴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아내, 두 아들까지 네 식구가 10년 가까이 살아온 187㎡ 아파트는 삼면으로 드넓은 숲이 펼쳐지고, 도심에서 벗어나 가족만의 리듬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곳이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이던 셈. 부부는 새로운 집을 찾는 대신 오랜 시간 가족의 삶을 잘 담아준 이 집을 다시 한번 고쳐보기로 했다. 목표는 명료했다. 비우고,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 앞으로 펼쳐질 시간도 이곳에서 잘 맞이할 수 있도록.

고친 사람 이야기
다시, 바깥을 향해 열린 집
10년 전에도, 이번에도 레노베이션은 달앤스타일 박지현 대표가 함께했다. 스튜디오의 스타일을 앞세우기보다 클라이언트의 고유한 생활 방식을 공간에 담아온 박지현 대표는 이번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진 가족의 삶을 읽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 이 집을 고칠 때는 가족이 전에 살던 전원주택의 분위기를 반영해 원목을 주로 사용했어요. 내추럴한 톤에 가구도 크고 존재감 있는 것을 택했죠. 그런데 시간이 흘러 자녀 들이 자라면서 생활은 간소해졌는데, 살림은 계속 늘면서 균형이 맞지 않는 상태가 됐어요. 짐이 곳곳에 쌓이면서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이던 자연을 향한 개방감도 많이 사라져 있었고요. 좋던 흔적을 남기되 잘 비우고 정돈해 바깥을 향해 열린 집을 만들려 했습니다.”

박지현 대표는 공간마다 쓰임에 맞는 수납을 촘촘하게 마련하고, 물건을 비워낸 자리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동선과 가구를 재배치했다. 어두운 원목으로 마감한 벽과 천장은 따뜻한 화이트 톤으로 바꿔 한층 밝게 만들고, 깔끔한 마감을 위해 디테일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에어컨도 공간의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주거 공간의 구조와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했죠. 캐리어의 멀티S 시스템 에어컨은 공간에 맞춰 냉방을 설계하고, 무광의 슬림한 디자인으로 천장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요. 공간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쾌적한 냉방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가구 역시 가볍고 이동하기 간편한 제품으로 바꾸었다. 길이가 6m에 달하던 테이블 대신 콤팩트한 원형 테이블을 들이고, 중후한 분위기의 소파는 단순한 형태의 모듈 제품으로 교체했다. 거대한 TV 또한 원하는 대로 옮길 수 있는 커스템kustem 제품으로 바꿨다. 필요하면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하나의 공간을 여러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 TV 대신 트로피와 책을 두는 수납장을 설치한 벽은 가족이 지나온 시간을 보여주는 장소가 되었다.



가장 환골탈태한 곳은 주방과 안방. 먼저 주방은 냉장고와 DJI 로봇 청소기를 비롯한 가전은 물론, 콘센트까지 수납장 안으로 매입해 문을 닫으면 하나의 벽면으로 보일 만큼 말끔하다. 10년 가까이 생활하며 가족에게 가장 편안한 동선과 위치를 파악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고. 안방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박지현 대표는 베란다에 맥락 없이 놓여 있던 김치냉장고와 군고구마 오븐, 사방에 놓인 행어에 빼곡하던 옷과 물건을 별도의 창고로 옮기고, 바깥을 향해 활짝 열리는 폴딩 도어를 설치했다. 물건에 가려져 있던 숲이 다시 실내로 들어오면서 그가 원하던 자연을 벗하는 호텔 같은 침실이 완성되었다. 이번 촬영 전날에도 창을 활짝 열고 음악을 틀어놓은 채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고. 아파트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창 너머의 자연은 집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온다.


3주 동안 진행한 레노베이션은 집을 옮기거나 기존 공간의 구조를 완전히 뒤집은 것은 아니었지만, 가족의 생활을 다시 정돈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류승룡 씨 가족에게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좋은 집에 대한 정답은 저마다 다르다. 그에게 좋은 집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연과 가깝고, 삶의 짐을 더하는 대신 내려놓을 수 있는 곳. “집을 고치면서 생활 루틴을 하나씩 점검하고 정리하니 손에 닿는 것부터 먹는 것, 일까지 한결 편해졌어요. 어디서든 편히 앉아 음악을 듣고 책도 보고, 제대로 쉴 수 있는 집이 되었고요. 집을 시작으로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보고 있어요. 앞으로도 무언가를 더 채우기보다는 비우고 정리하며 살아보려 합니다.”
전문가
박지현 | 달앤스타일
디자인과 시공을 맡은 달앤스타일 박지현 대표는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실용적이고 세련된 공간 설계로 주목받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한 치의 낭비 없는 수납 계획과 과감한 동선 재배치 등 뼈대부터 다시 세우는 치밀한 구조변경에 탁월하다. 뛰어난 감각으로 다수의 셀러브리티 하우스 인테리어를 전담해 작업 중이다. dallnschole.com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