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된 수납으로 공간을 정리하는 법

공간 크리에이터 이지영

글 손지연 기자 | 사진 박찬우

가족이 모이는 광장 콘셉트로 연출한 거실 공간. 집 안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지만 수납을 채우는 대신 역할에 충실했다.

다양한 미디어와 저서에서 ‘정리 정돈’으로 사람들에게 휴식과 에너지를 선물하는 공간 크리에이터 이지영 대표. 공간의 마법사로 활약해온 그가 최근 이사하면서 새 보금자리를 꾸몄다.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한 이 집의 인테리어 키워드는 단연 ‘정리’다. 하지만 무조건 버리고 감추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철저한 계산 아래 공간마다 역할을 부여하고, 그 안에서 가족 개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유연한 질서가 이 집의 진짜 매력이다.

꾸민 사람 이야기

이지영 대표에게 정리는 단순히 물건을 치우는 행위가 아니라 가족의 동선을 파악하고 공간마다 명확한 ‘역할과 콘셉트’를 부여하는 기획 과정이다. 그는 무조건 비우는 대신 시선이 닿는 곳에 둘 물건과 철저히 감출 물건을 선별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결국 보이는 수납을 잘하려면 애초에 내 취향을 알고 잘 구입해야 하며, 불필요한 것을 잘 비워내야 합니다”라는 말에서 그의 공간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집 안 곳곳에 입체적으로 구현돼 있다. 가족 구성원 각자의 생활 습관을 존중하면서도 단정한 질서를 유지하는 이지영 대표의 공간별 맞춤 수납 공식을 들여다보았다.

이배 작가의 작품을 걸어 깔끔하게 정리한 화이트 톤의 거실 풍경.
이배 작가의 작품을 걸어 깔끔하게 정리한 화이트 톤의 거실 풍경.

거실: 수납을 비우고 사람을 채운 ‘광장’
보통 집은 거실이 넓은 만큼 한쪽 벽면에 대형 수납장을 짜 넣는 등 부족한 수납공간을 채우기 마련이지만, 이지영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가족이 모여 대화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며 ‘광장’이라는 콘셉트를 정한 것. 가족이 마주 앉아 책을 읽거나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 중심으로 여백을 두었다. “우리가 평소에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보면 어디에 무얼 두어야 할지 명확해 져요. 사실 책은 거실 소파나 안락의자에 앉아 편하게 읽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책은 무조건 서재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거실에서 책을 싹 치워버리면 집은 깨끗해 보일지 몰라도 삶은 불편해지는 거죠.” 그래서 거실에는 TV를 과감히 없애고 소파와 의자 옆에 소파 테이블을 두었다. 각자 책을 읽고 스마트폰을 보더라도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배치다. 수납을 포기한 대신 가족의 대화와 온기를 채운 것이다.

벽면 전체를 수납장으로 구성해 집 안의 모든 물건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주방.
벽면 전체를 수납장으로 구성해 집 안의 모든 물건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주방.

주방: 일상 물건을 한데 모은 ‘수납왕’
가족이 가장 자주 오가는 주방의 콘셉트는 역설적이게도 ‘수납왕’이다. 이전 집보다 좁아진 주방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냉장고 빌트인 벽면 전체를 수납장으로 구성했다. 위 칸에는 식료품을, 아래 칸에는 휴지나 치약 같은 온갖 생필품을 모아 ‘이곳에 가면 모든 것이 있다’는 집 안의 명확한 기준점을 세웠다. 식료품과 생필품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 못 찾아서 사거나 몰라서 사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수납장 내부에는 통일된 흰색 수납함을 활용했다. 기성 수납함만으로도 충분히 정돈할 수 있기에 굳이 공간에 딱 맞춘 고가의 기능성 박스를 고집하지 않았다. 무한정 늘어나기 쉬운 일회용품 역시 작은 수납 꽂이를 지정해 그 범위를 넘지 않도록 관리한다. “정리 방식에 너무 많은 규칙을 세워두면 유지하기가 어려워요. 세세한 수칙 대신 확실한 기준선 하나만 세우세요. 정해진 영역 안에서는 자유를 주되 그 한계를 넘지 않게 조절하는 것, 이것이 스트레스 없이 정리를 일상화하는 가장 현실적 방법입니다.” 서랍장 안 양념통이나 식재료 역시 굳이 예쁜 용기에 소분하지 않고 시판 용기 그대로 두어 편한 살림을 추구한다. 소분 자체가 일이 되지 않도록 보기 좋게 정리만 했다. 보이기 위한 정리가 아닌, 실제로 사는 ‘사람’을 위한 정리이기 때문이다.

이전 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아진 주방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짐을 줄이고 모두 수납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전 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아진 주방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짐을 줄이고 모두 수납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안방 화장실 옆의 파우더룸이 서재로 재탄생했다. 이지영 대표의 개인 공간으로 깔끔하게 연출한 것.
안방 화장실 옆의 파우더룸이 서재로 재탄생했다. 이지영 대표의 개인 공간으로 깔끔하게 연출한 것.

안방과 서재: 고정관념을 깬 동선 재배치
방의 쓰임새도 가족의 실제 생활 패턴에 맞춰 재편했다. 흔히 안방 화장실 옆에 있는 파우더룸 겸 드레스룸은 이 대표의 개인 공간으로 연출했다. 독서나 작업을 위한 독립된 방을 따로 만들기보다 침실 바로 옆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실용적이라 판단한 것. 서재라고 해서 책이 겉으로 드러날 필요는 없다. 책은 모두 수납장 속에 숨겨 불필요한 시각적 요소를 없앴다. 책상 위는 늘 비워두어 집중력을 높이되, 자주 쓰는 화장품이나 헤어 기기는 선을 정리할 필요 없이 툭 던져 넣을 수 있도록 깊은 맞춤 서랍을 짜 넣었다.

이지영 대표는 부부가 각자 침대에서 어떤 행동을 자주 하느냐를 관찰한 뒤 침대 옆에 수납장을 만들었다. 마스크 팩, 책 등 자질구레한 물건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이지영 대표는 부부가 각자 침대에서 어떤 행동을 자주 하느냐를 관찰한 뒤 침대 옆에 수납장을 만들었다. 마스크 팩, 책 등 자질구레한 물건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안방 화장실은 ‘따뜻한 동굴’이라는 콘셉트 아래 따뜻한 조명등을 설치했다. 공용 화장실과 달리, 이지영 대표만의 개인 공간이다.
안방 화장실은 ‘따뜻한 동굴’이라는 콘셉트 아래 따뜻한 조명등을 설치했다. 공용 화장실과 달리, 이지영 대표만의 개인 공간이다.
남편 옷과 아내 옷을 철저히 분리해 개인의 옷 규모에 맞게 장을 정리했다.
남편 옷과 아내 옷을 철저히 분리해 개인의 옷 규모에 맞게 장을 정리했다.
거실에서 딸아이의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에는 이명미 작가의 작품을 걸어두었다.
거실에서 딸아이의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에는 이명미 작가의 작품을 걸어두었다.

아이 방: 다름을 인정하는 느슨한 기준
정리 성향이 정반대인 두 자녀의 방은 가족 각자의 생활방식을 온전히 존중한 결과물이다. 모든 물건을 눈앞에 늘어놓아야 안심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아들을 위해 억지로 물건을 숨기게 하는 대신, 가방과 물건을 던져둘 수 있는 매트를 깔아주었다. 물건이 흩어지지 않을 최소한의 구획(기준선)만 마련해준 것. 반면 미니멀한 성향의 딸 방은 아이의 방식대로 물건을 몽땅 수납장 안에 숨겨두도록 허용했다. “우리 집 식구들은 각자 선호하는 옷걸이 종류도 각기 다를 만큼 정말 성향이 달라요. 정리를 안 하면 문제지만,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정리를 하니까 괜찮아요. 제가 쓰는 정리 방법은 저에게만 좋은 방법이잖아요.” 서로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 이 ‘느슨한 기준’이야말로 온 가족이 스트레스 없이 깨끗한 공간을 유지하는 비결 아닐까?

모든 물건을 눈앞에 늘어놓아야 안심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아들 방. 각자의 서로 다른 정리 습관을 존중하는 것이야 말로 온 가족이 스트레스 없이 깨끗한 공간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모든 물건을 눈앞에 늘어놓아야 안심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아들 방. 각자의 서로 다른 정리 습관을 존중하는 것이야 말로 온 가족이 스트레스 없이 깨끗한 공간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결국 이지영 대표가 보여준 공간의 마법은 화려한 수납 기술이나 값비싼 아이템이 아니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완벽함 대신 나와 내 가족이 매일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실용성’을 선택하고, 엄격한 수칙 대신 유연한 ‘기준선’을 그어준 것. 무작정 비우거나 억지로 감추려 애쓰지 않아도 좋다. 나만의 취향이 담긴 물건을 남겨두고 가족의 생활 패턴과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할 때 비로소 집 안의 질서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실현 가능한 정리를 위한 전문가 팁
정리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완벽함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다. 식구들의 실제 행동 패턴과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할 때 비로소 집 안의 질서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일상에서 바로 실천해볼 수 있는 이지영 대표의 유연하고 현실적인 수납법.

추억은 상자 안이 아닌 ‘상징물’로 남기기
추억은 상자 안이 아닌 ‘상징물’로 남기기
사용자 습관을 고려한 ‘맞춤 옷걸이’
사용자 습관을 고려한 ‘맞춤 옷걸이’
소분 없는 ‘편한 살림’과 우유 팩의 재발견
소분 없는 ‘편한 살림’과 우유 팩의 재발견
고정관념을 깨는 동선 중심 수납
고정관념을 깨는 동선 중심 수납

1 추억은 상자 안이 아닌 ‘상징물’로 남기기
추억이 담긴 물건을 무작정 버릴 수도, 부피 큰 상자째 쌓아둘 수도 없을 때 유용한 방법. 아이들이 어릴 때 가장 애정을 쏟은 보드게임 ‘부루마블’을 정리할 때 이 대표는 게임판 전체를 보관하는 대신 상징적 미니 건물 몇 개만 남겨 서재 선반 위에 놓아두었다. 추억은 깊은 상자 안에 가두는 대신 눈에 띄는 자리에 상징적으로 남겨둘 때 비로소 일상 속에서 따뜻하게 반짝인다는 것이 이 대표의 조언이다.

2 사용자 습관을 고려한 ‘맞춤 옷걸이’
옷걸이는 옷장의 정돈뿐만 아니라 정리의 지속성을 결정짓는 숨은 열쇠다. 이지영 대표는 식구 각자의 행동 패턴에 맞춰 옷걸이 종류를 다르게 선택한다. 옷을 훌렁 잡아당겨 입는 아들에게는 상의용으로 잘 미끄러지는 플라스틱 옷걸이를 권하고, 잘 흘러내리는 반바지에는 논슬립 옷걸이를 매치하는 식이다. 사용자 습관을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그에 맞는 도구를 건넬 때 정리는 한결 쉬워진다.

3 소분 없는 ‘편한 살림’과 우유 팩의 재발견
양념을 일일이 예쁜 용기에 옮겨 담는 소분 작업 역시 살림의 큰 스트레스가 되기 쉽다. 이 대표는 대용량을 소분하는 대신 애초에 알맞은 크기의 시판 제품을 사서 그대로 사용한다. 다만 양념병 아래로 흘러내리는 오염을 막기 위해 자른 우유 팩에 병을 하나씩 세워두었다. 지저분해지면 우유 팩만 교체하면 되니 깔끔함과 편리함을 동시에 잡은 일석이조의 팁이다.

4 고정관념을 깨는 동선 중심 수납
‘옷은 옷장에, 신발은 신발장에’라는 관습적 수납 공식이 늘 정답은 아니다. 이 집 신발장 안에는 늘 양말 3~4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외출 직전 샌들에서 운동화로 갈아 신을 때 양말을 가지러 방까지 오가는 번거로운 동선을 줄이기 위한 재치 있는 아이디어다. 실제 사용하는 ‘위치’와 ‘동선’에 맞춰 지정할 때 일상의 수고가 크게 줄어든다.

전문가

이지영 | 새삶

공간 크리에이터 이지영 대표는 단순한 물건 정리를 넘어 가족의 동선과 공간별 명확한 콘셉트를 기획하는 공간 컨설턴트입니다. 무조건적인 비움과 강박적인 규칙 대신, 거주자의 취향과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유연한 '기준선'을 제안하며 실용적인 수납 철학을 전파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