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 곳곳에 원색이 등장하는 연희동 빌라 1층 집은 노란 터틀넥 위에 보라색 오버롤즈를 매치하고 환한 미소로 방문객을 반기던 집주인과 꼭 닮아 있다. 네 식구의 취향과 건축가의 스타일이 알맞게 녹아든 집에서 가족은 다시 한번 여정을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진화원 씨 가족의 집 인테리어는 15년째 진행 중이다. 다섯 식구의 시간이 흔적처럼 쌓인 공간에 작가의 작품,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디테일이 어우러져 가족만을 위한 풍경을 지어내는 집. 획일적 구조의 198㎡ 아파트에서도 주택처럼 사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
이번 칼럼은 건축가가 지은 집이자 건축가가 사는 집이다. 왠지 더 특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일본 저자가 쓴 <건축가가 사는 집>이란 책이 있는데(<행복이 가득한 집>을 펴내는 디자인하우스에서 나왔다), 한국에는 아직 이런 책을 펴낸 건축가가 없다. 많은 건축가가 아파트에 살기 때문이다. 건축가가 사는 집을 보고 싶다는 갈증이 오랫동안 있던 터라 더 반갑고 흥미로웠던 취재.
반세기쯤 살다 보면 누구나 마음속 한구석에 작은 오두막집 하나쯤 품고 산다. 한적한 제주에 귤 창고처럼 아담하고 현무암처럼 무덤덤한 비밀 기지를 짓고 파도 소리를 벗 삼아 바다를 꿈꾸는 남자.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동네 어귀마다 슈퍼모델이 떼 지어 있는 형국”이라 비유하며 작은 프레임으로 숲과 나무, 노을을 수확하는 사진가 김한준을 만났다. 숲은 변하지 않아서 좋고, 바다는 항상 변해서 좋다는 그와 슬로보트에서 나눈 이야기는 느린 항해처럼 잔잔했다.
아늑하고 편안한 집 한 채가 지어지기까지 참 다양한 조건이 필요한데, 점점 존재감을 부풀리며 크게 와닿는 능력이 ‘공간 상상력’이다. 평면인 땅에 입체적 사고와 상상력을 더해 이렇게 설계해보면 어떨까? 이런 느낌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신나게 퍼즐 놀이를 하는 시간. 양평에 있는 회사원 이규헌 씨의 집은 그렇듯 즐거운 발상과 제안으로 포근한 공간이었다.
검고 긴 찻상 하나 단출하게 놓인 방에 앉으면 네모난 하늘이 눈에 꽉 찬다. 내게 필요한 생활용품을 촘촘히 넣으니 침실, 부엌, 마당도 충분하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스물다섯 평 한옥에서 기억 저편의 옛집과 완전히 새로운 한옥 스타일을 함께 만났다.
요즘은 취향이 범람한다고들 한다. 귀가 닳도록 들어서 언급조차 망설여지는 ‘그’ 단어의 매력이 희석되려던 찰나, 운명처럼 최재형 씨를 만났다. 그리고 취향이라는 흔한 단어가 갑작스레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는 집 생각밖에 없어요.” 인터뷰 말미, 서윤정 작가가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쑥스럽다는 듯 한 말이다. 이 말은 묘한 행복의 기운을 품고 있어서 듣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진다. 집 생각밖에 없다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과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얼마나 좋을까. 이번 인터뷰가 특히 인상 깊은 것은 그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남편과 아이 역시 무척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 함께 살기를 꿈꿔온 세 가구가 있다. 서로 조금씩 나누고 각자의 공간을 확장하며 새로운 주거 형태를 실험하는 사람들. 풍년빌라는 이들과 건축가 김대균의 섬세한 합작품이다.
제주 사계리 마을에 거대한 콘크리트 경사 지붕 집이 들어섰다. 파파레서피 김한균 대표의 가족은 주말이면 이곳에서 온종일 뛰놀고 먹고 쉬며 하루를 보낸다. 반복되는 집에서의 시간을 벗어나 커다란 지붕 아래에서 되찾은 여덟 식구의 새로운 일상.
지난여름, 한강 풍경이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 김지영 씨 가족이 새 둥지를 틀었다. 20년 전 집을 고칠 때 함께한 트위니 심희진 대표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춰 완성한 164㎡ 아파트 수선기.
앵발리드가 내다보이는 파리 7구의 아파트를 연상시키는 신당동 골목의 그 집. 삼한사온과 미세먼지로 가득한 서울 한복판에서 일과 가족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사는 그 집 주인의 모습이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니다. 대학에서 ‘교양’을 가르치는 교수 남편, 자연 재료로 주얼리를 만드는 디자이너 아내의 가슬가슬하고도 온기 가득한 일상. 그 중심엔 셰이프 게임처럼 부부가 함께한 집 짓기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