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쯤 살다 보면 누구나 마음속 한구석에 작은 오두막집 하나쯤 품고 산다. 한적한 제주에 귤 창고처럼 아담하고 현무암처럼 무덤덤한 비밀 기지를 짓고 파도 소리를 벗 삼아 바다를 꿈꾸는 남자.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동네 어귀마다 슈퍼모델이 떼 지어 있는 형국”이라 비유하며 작은 프레임으로 숲과 나무, 노을을 수확하는 사진가 김한준을 만났다. 숲은 변하지 않아서 좋고, 바다는 항상 변해서 좋다는 그와 슬로보트에서 나눈 이야기는 느린 항해처럼 잔잔했다.
아늑하고 편안한 집 한 채가 지어지기까지 참 다양한 조건이 필요한데, 점점 존재감을 부풀리며 크게 와닿는 능력이 ‘공간 상상력’이다. 평면인 땅에 입체적 사고와 상상력을 더해 이렇게 설계해보면 어떨까? 이런 느낌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신나게 퍼즐 놀이를 하는 시간. 양평에 있는 회사원 이규헌 씨의 집은 그렇듯 즐거운 발상과 제안으로 포근한 공간이었다.
앵발리드가 내다보이는 파리 7구의 아파트를 연상시키는 신당동 골목의 그 집. 삼한사온과 미세먼지로 가득한 서울 한복판에서 일과 가족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사는 그 집 주인의 모습이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니다. 대학에서 ‘교양’을 가르치는 교수 남편, 자연 재료로 주얼리를 만드는 디자이너 아내의 가슬가슬하고도 온기 가득한 일상. 그 중심엔 셰이프 게임처럼 부부가 함께한 집 짓기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