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계리 마을에 거대한 콘크리트 경사 지붕 집이 들어섰다. 파파레서피 김한균 대표의 가족은 주말이면 이곳에서 온종일 뛰놀고 먹고 쉬며 하루를 보낸다. 반복되는 집에서의 시간을 벗어나 커다란 지붕 아래에서 되찾은 여덟 식구의 새로운 일상.
사는 사람 이야기
김한균 대표와 가족들
아이의 시간은 어른의 시간보다 천천히 흐른다. 미국 듀크 대학교 에이드리언 베잔 교수는 이를 마음의 시간(인지한 이미지가 대뇌피질에 도달하는 시간)과 물리적 시간의 차이를 들어 설명한다. 마음의 시간은 감각기관의 자극을 통해 형성되는 일련의 이미지로 채워지는데, 신체가 노화할수록 이 이미지를 습득하고 처리하는 속도가 느려져 시간의 불일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아이는 어른보다 이미지를 빨리 처리하며,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엮어낸다. 영국 배스 대학교 크리스티안 예이츠 교수는 “우리가 감지하는 시간은 이미 살았던 기간의 비율에 좌우되므로 다섯 살 어린아이가 보내는 5년은 마흔 살 어른의 40년과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의 이론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시간은 기억에 더 많이 남는다. 그것은 차곡차곡 저장되었다가 문득 떠오르는 추억이 되고, 그중 어떤 순간은 평생을 지탱하는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네 아이의 아빠이자 뷰티 브랜드 파파레서피를 운영하는 김한균 대표가 제주에 세컨드 하우스를 지은 데에도 이 같은 생각이 바탕이 됐다. 그는 첫째 딸의 피부 고민 때문에 천연 원료로 제조하는 화장품 브랜드를 창립했을 정도로 가족이 삶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일 때문에 한 지역에서 1년 이상 살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자주 집을 옮겼어요. 40대에는 일보다는 아이들과 조금 더 여유롭게 보내고 싶었고, 아직 아이들이 어릴 때 자연 속에서 가족과 좀 더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김한균 대표 부부와 네 아이, 아내의 부모님까지 여덟 식구는 5년 전 제주로 이주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오롯한 가족의 시간을 두루 확보하기 위해 학교 근처 아파트와 자연이 가까운 주말 주택을 오가는 두 집살이를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사계리는 바다도, 산도 가까우면서 마을도 어느 정도 형성된 곳이었어요. 특히 제주에 올 때마다 좋아하던 산방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산방산이 풍경처럼 자리하는 집을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김한균 대표는 사계리 마을에 세컨드 하우스를 짓고,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사계아방’(아방은 아버지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집이 완성된 뒤로 김한균 대표 가족은 슬기로운 두 집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 일과가 없는 날이면 늘 이곳에서 지내며 정원을 뛰놀거나 수영하고, 할머니와 텃밭에서 채소를 돌본다. 요리가 취미인 김한균 대표는 부지런히 삼시 세끼를 담당하고, 저녁이면 야외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쏟아질 듯한 별을 보며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사계아방은 정말 놀러 가는 집이에요. 집의 일상적 일에서 벗어나 가족 모두 내일은 없다는 마음으로 놉니다.(웃음) 아파트는 아이들의 생활에 모두 맞춰져 있다면, 이곳은 가족 전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언제든지 쉬러 갈 집이 또 하나 있다는 것이 큰 안정감을 주고, 내가 원하는 공간에 머무를 수 있다는 점에서 삶의 질이 정말 좋아졌어요. 가족들이 함께 지내는 시간도 평소보다 더 많아졌고요. 아이들이 자랄수록 한데 모이게 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물리적으로라도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이곳이 더욱 소중합니다. 온 가족이 언제든 놀러 갈 수 있게 비워둔 별장으로 삼고 싶어요.”
지은 사람 이야기
건축가 조병수
뜻을 함께한 이는 건축가 조병수다. 땅의 장소성을 지키는 건축물을 지어온 건축가는 가족의 든든한 바탕이 되어줄 집을 설계했고, 조병수건축연구소 윤혜진 팀장과 조경 디자이너 전용성, 공정건설 고찬욱 소장은 이를 실재하는 형태로 구현해냈다. 제주에서 자라 이제는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는 가족의 생활에 맞춘 가구를 더했다.
“산방산이 바라다보이는 모습이 정말 듬직했고, 반대편의 들판과 멀리 언뜻 보이는 바다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조망에 대응하면서도 뜨거운 제주 햇살과 바람을 막아줄 방법으로 생각한 것이 땅에서 이어지는 기울어진 판이었어요. 그렇게 경사 지붕 집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조병수 소장의 소개에 따르면 이 지붕은 ‘산방산에서 이어지는 땅의 흐름을 잇고, 품고, 또 흘려보내며 이 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그 장소성을 경험하고 모색하는 요소’다. 그리고 그 지붕 아래에 움막처럼 가족의 집이 있다.
1640㎡ 규모의 대지에서 집이 차지하는 면적은 불과 250㎡ 정도. 넓은 정원과 텃밭, 수영장과 발을 담그는 나지막한 풀, 캠핑 존까지 모두 실외에 자리한다. 텃밭을 가꾸고, 수영을 하거나, 옹기종기 둘러앉아 모닥불을 피우는 등 야외 활동은 가족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이자 제주의 땅과 교감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실내 또한 함께 지내는 집에 초점을 맞췄다. 각자의 침실은 최소한의 크기로 프라이빗하게 배치하고, 함께 이용하는 거실과 다이닝 및 주방은 하나로 이어진 넓은 공간으로 계획했다.
“ 땅이 지닌 환경을 가장 잘 경험하고 살리는 집입니다. 아이들이 자연과 접하고 몸으로 경험하며 자라는 집, 그래서 커서도 기억에 남을 순간을 만들어줄 곳을 지으려 했습니다.”

바탕처럼 만든 집을 채우는 것은 디자이너의 가구. 김한균 대표와 친한 사이인 팀바이럴스 문승지 대표가 제주에 이사 온 것을 기념하며 선물한 것이라고. 그는 제주스러운 가구를 만들어달라는 김한균 대표의 요청에 맞춰 소파와 테이블, 체어를 비롯해 침대, 야외 벤치까지 집 안팎의 모든 가구를 직접 디자인했다.
“조병수 선생님의 설계를 보고 강한 형태로 존재감을 과시하기보다는 힘을 빼고 디자인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본 구조를 잘 지켜서 편안하게 오래 쓸 수 있는 가구가 핵심이었습니다. 또 특정한 형태보다는 제주 고유의 분재인 석부작이나 정낭 등 이곳의 문화를 녹여냈습니다.”
사계아방에서는 아이들만 아니라 어른들의 시간도 한결 천천히 흘러간다. 이곳에서만은 늘 함께인 가족, 그들을 넉넉히 품어주는 제주의 자연, 그리고 이제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버린 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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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소개
조병수 조병수건축연구소
건축가 조병수는 조병수건축연구소 대표로, 하버드 대학교와 독일 국립대학교 등의 대학에서 설계와 이론을 가르쳤고, 2014년에는 덴마크 오르후스 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미국 건축 잡지 <아키텍처럴 레코드>에서 ‘세계의 선도적 건축가 11인’에 선정된 바 있다. 2023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다. 오는 4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모스카파트너스 베리에이션MoscaPartners Variations 전시를 맡아 작업중이다.
건축 개요
위치 |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 |
형태 | 원룸&오피스텔 |
설계기간 | 2021.10 ~ 2022.07 |
시공기간 | 2022.10 ~ 2023.07 |
대지면적 | 228.9m² |
건축면적 | 112.11m² |
연면적 | 193.34m² |
주차 | 2대 |
건폐율 | 48.98% |
용적률 | 84.46% |
구조 | 철근콘크리트조, 경량목구조 |
외부마감 | 벽돌, 테라코트 |
내부마감 | 수성페인트, 노출콘크리트, 자작합판, 원목마루 |
구조설계 | ㈜한길구조엔지니어링 |
기계,전기설계 | ㈜지엠이엠씨 |
조경 | 한아름 |
시공 | 디엠산업개발 주식회사 |
감리 | 해담건축 CM |
비용상세
총비용 | 736,000,000원 |
토지구매비용 | 200,000,000원 |
토지 취득세 + 등록세 | 68,000,000원 |
토지설계 및 인허가비 | 4,000,000원 |
건축설계비 | 10,000,000원 |
건축인허가비 | 5,000,000원 |
건축비 | 400,000,000원 |
기반시설 인입비 | 5,000,000원 |
정화조 설치비 | 5,000,000원 |
경계 측량 지적현황 측량비 | 1,000,000원 |
주방, 가구비용 | 20,000,000원 |
정원, 마당 조경비용 | 9,000,000원 |
건축물 취득세 | 6,000,000원 |
건축물 등록세 | 2,400,000원 |
농어촌 특별세 | 600,000원 |
총비용 | 736,000,000원 |
자재 상세 리스트
구분 | 위치 | 브랜드 | 제품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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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재 | 거실 계단 | 혼드 | ST-03 스톤컬러 |
마감재 | 가구 상판 | 혼드 | ST-05 대리석 |
마감재 | 거실 벽면 | 혼드 | TL-02 대리석 |
마감재 | 바닥, 벽 | 혼드 | TL-04 |
마감재 | 2F/3F 화장실 벽 | 혼드 | TL-05 |
마감재 | 2F 바닥 | J.WOOD | WF-01 |
마감재 | 가구 상판, 도어 | J.WOOD | WD-02 |
마감재 | 도어 핸들 | 헤어린 | MT-03 |
마감재 | 벽, 천장 | 삼화페인트 | PT-01 |
마감재 | 실내 가구 | 삼화페인트 | PT-04 |
마감재 | 안전난간 | 삼화페인트 | PT-05 |
인테리어 | 1층 화장실 거울 | 은경 | MR-01 |
기타 | 세면 수전 | Jeinis | SS-C340ST |
기타 | 주방 수전 | Jeinis | SS-A300 |
기타 | 양변기 | 대림바스 | CC213 |
기타 | 소변기 | 대림바스 | CC511UJ |
기타 | 화장실 옷걸이 | 아메리칸 스탠다드 | |
기타 | 휴지걸이 | 아메리칸 스탠다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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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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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박찬우(별도 표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