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서민규는 2007년 두 아이가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 겸 집을 지었다. 그곳에서 18년을 보내며 가족은 집의 일부로, 집은 동네의 일부로 확장해갔다. 작가는 그 시간을 틈틈이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에게 이 집은 가족이 함께 보낸 시간이자 삶의 뿌리가 되는 기억이고, 더불어 훌쩍 자란 또 하나의 가족과도 같다.
사는 사람 이야기
사진작가 서민규 씨 가족
<행복>에서 소개하는 집은 대개 갓 완성된 공간일 때가 많다. 집주인이 건축가와 합심해 집을 지은 과정과 앞으로 그곳에서 채워갈 시간을 다룬다. 그러나 건축가의 이야기가 거기서 끝나는 것과 달리 집의 진짜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이번에 소개하는 서민규 작가의 집은 이미 그 시간을 보낸 공간의 이야기다. 그동안의 기사가 집의 프롤로그라면, 이 기사는 에필로그인 셈이다.
이 집을 발견한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전시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에서였다. 사진 옆 건축가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특이한 공간 구조의 집에서 두 아들은 자주 친구들을 초대했고, 시간이 지나 이곳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졸업식 날에 아이 학교의 모든 졸업생이 여기서 다 함께 파티를 열었다는 이야기를 건축주에게 들었을 때는 마음이 뭉클했다.“

그곳에서 펼쳐졌을 시간이 궁금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꽃비가 흩날리던 4월, 대구로 향했다.
서민규 작가는 대구에서 출판사 마르시안스토리를 운영하며 작가의 사진 작업을 출판과 전시 형태로 소개한다. 그리고 제주를 오가며 원시적 자연의 풍경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함께 일하던 친구들로부터 독립하면서 출판사 겸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부모님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것이 지금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아이들에게도 그런 시간을 주고 싶었고, 저 또한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았죠. 아파트보다는 자연이 가까운 주택에서 가족과 일을 합쳐 살아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실험이자 모험이었어요.”
그는 사진을 찍으러 대구 곳곳을 다니다 앞산 아래 오래된 이 동네를 발견했다. 개발이 되지 않고 새로운 사람의 유입이 없었지만, 그 덕에 이웃간의 정이 남아 있었다. 4년을 살핀 끝에 아이들이 큰 도로를 건너지 않고 걸어서 학교에 갈 수 있고,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쬐던 지금의 집터를 발견했다. 그가 당시 전시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던 착착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김대균 소장에게 설계를 의뢰하며 요청한 것은 단 하나. 작업하면서 두 아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집이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오픈 하우스
담장 대신 너른 마당이 있고, 스튜디오를 겸하는 덕분에 느슨하게 열린 형태의 집은 금세 동네 아이들이 즐겨 찾는 놀이터가 됐다. 그때부터 이곳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흘렀다. 아이들은 매일 잔디밭을 뒹굴며 뛰어놀았고, 여름이면 마당에 설치한 커다란 풀장에서 하루 종일 물놀이를 했다. 아이들을 따라 필로티에는 자연스레 부모들이 모이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정말이지 살아 있는 공간이었어요. 항상 누군가 와서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문도 잠그지 않고 다녔죠. 뮤지션이던 후배가 힘든 시기를 보낼 때는 대문을 열고 사람들을 초대해 공연을 열기도 했어요. 모두 건축가가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공간을 만들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서민규 작가의 말처럼 단순한 큐브 형태의 공간이었다면 벌어지지 않을 일들이 집 안 곳곳에서 생겨났다. 특히 아이들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공간을 점거했다. 지하층을 3분의 1만큼 들어 올리면서 생겨난 창 옆의 틈이나 계단 아래 좁은 공간은 두 아이의 아지트가 됐고, 스튜디오로 이어지는 계단은 장난감을 줄 세우는 무대로, 1층의 좁은 복도는 달리기 시합을 하는 트랙으로 변신했다. 그중에서도 김대균 소장이 전시에서 언급하기도 한 졸업식 날은 그 시기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사건이었다.
“저에게 초등학교 졸업식은 쓸쓸하고 긴장되는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중학교에 가야 하는 부담감과 친구들과 헤어지는 아쉬움이 교차하고, 날씨는 또 얼마나 추워요. 그런데 그날은 그동안의 습관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모였어요. 불을 피우고 테이블을 놓고, 학부모들도 음식을 갖고 와서 반나절을 놀다 갔죠. 아이들도 나름의 근심과 불안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함께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그 시간을 아직 잊올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떠난 자리는 부부와 지인들이 모이는 놀이터가 됐다. 서민규 작가는 집이 완성되고 2~3년 후 직접 오두막을 짓고, 겨울을 제외하고는 그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하루 종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오두막에서 사진 작업을 하고, 아내와 함께 커피를 내려 마시고, 책도 읽는다. 그렇게 이어져온 집의 수많은 변천사를 서민규 작가는 매년 사진으로 기록했다. 처음 집터를 다지던 순간부터 수많은 아이가 모여 집 안을 활보하던 모습, 아이들이 사라진 곳에 찾아든 고양이들, 햇빛이 비치는 집 안, 그 시간 동안 성큼 자라난 나무들까지. 사진 속에는 그들의 시절이 하나하나 담겨 있다.
“형편이 넉넉해서 집을 지은 게 아니었어요. 새로운 장소에서 무언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서, 어렵지만 하나씩 시작한 일이었죠. 오시는 분들이 모두 하시는 말씀이 이곳은 중력이 남다르대요. 사람들이 집엘 안 가.(웃음) 그런데 그 말이 좋더라고요. 집은 같이 인생을 살아가고 성장하는 장소 같아요. 아파트였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을 집과 사무실, 정원이 있는 이곳에서 섬세하게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은 사람 이야기
건축가 김대균 착착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대표
김대균 소장은 안팎이 유연하게 연결되고, 작업실과 거주 공간이 여러 레이어로 공존하는 집을 설계하며 그의 요구에 완벽히 응했다.
“원래 있던 집을 철거하고 남은 지하 구조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 설계의 중요한 시작점이 되었어요. 층고가 1.8m로 낮았기에 60cm 정도를 더 띄우고, 그 높이만큼 창을 설치해 지하에 채광을 들였습니다. 그중 절반은 1층까지 뚫려 있게 했고요. 그러면서 층고가 다양해졌고, 스튜디오와 집이라는 서로 다른 용도가 입혀지면서 이곳만의 독특한 공간감이 생기게 되었어요.“
지하는 사진집을 제작하는 스튜디오로, 1층은 집과 스튜디오 기능이 뒤섞인 응접실로 구성하고, 일하면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 하던 서민규 작가의 요구에 맞춰 아이 방을 함께 두었다. 2층은 거실과 침실, 다이닝 등 주거 공간으로 분리했다. 김대균 소장은 비용이 비교적 적게 들면서 공간에 변화를 주기 쉬운 철골구조를 택하고, 1층은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도록 유리창을 설치해 개방감을 더욱 살렸다. 일부는 필로티(기둥과 천장이 있고 벽이 없는 공간) 구조로 설계해 수평적으로도 실내와 실외가 이어지도록 했다.

김대균 소장에게도 이 집은 여전히 특별한 프로젝트로 남아 있다.
“기존 건물과의 관계,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 빛과 지형, 주변과의 관계를 하나하나 고려하면서 설계한 집이었어요. 비용 때문에 포기할 일도 철골구조나 합판 마감처럼 다른 방법을 찾았고요. 집은 대개 나 또는 가족이 사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이고, 마올의 문화 공간이 되기도 하면서 여러 기억이 쌓인 장소가 되었어요. 건축을 단순히 건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기는 시간과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화 <보이후드>는 여섯 살인 주인공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매년 비슷한 시기에 배우들이 모여 촬영했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12년의 세월이 모여 탄생한 작품에는 영화의 이야기와 더불어 배우들이 성장한 시간도 함께 담겨 있다. 영화는 “우리가 이 순간을 잡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들이 우리를 붙잡는 것”이라 말하며 끝난다. 이 집의 연대기를 보면서 사진도 시간을 갖고 찍으면 영화 같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사진 못지않게 건축 또한 시간이 빚어내는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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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소개
김대균 착착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건축가 김대균은 착착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대표로, 인문학적 가치와 보편타당한 섬세함의 실현을 목표로 다양한 콘텐츠와 협업하며 공간을 설계한다. 대표 작업으로 뤁스퀘어, 하우스비전 재배의집, 대흥사 유선여관,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 이상의집 레노베이션, 풍년빌라, zikm 한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