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명희 대표의 사업자등록증에 박힌 상호는 라이크라이크홈LikeLikehome이다. 한국어로 바꾸면 좋아좋아집 혹은 좋다좋다집. 취재 전에는 힙합의 라임처럼 입에 착 감기는 리듬을 반영한 상호라고만 생각했는데, 취재를 다녀온 지금 드는 생각은 앞에 Like가 한 번 더 붙어도 될 것 같다는 일종의 감탄이다. 체화된 감각으로 집을 이렇게까지 살뜰히 가꾸고 위하는 사람이라니! 어쩌면 그녀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 같다.
사는 사람 이야기
손명희 라이크라이크홈 대표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셀 수 없이 많다. 유독 걱정이 많은 둘째에게는 세상 많은 일이 막상 부딪쳐보면 별것 아님을 가르쳐주고 싶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각자의 좌우명을 적어 오라는 숙제가 있길래 ‘해보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문장을 구호처럼 적어 냈다. 수학 문제를 느리게 풀다 선생님께 혼나지 않을까, 오해가 있어 대화를 해야 하는 친구를 끝내 설득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한가득인 딸을 보면서 이 말을 주문처럼 따라 하게 한다. 내가 “해보면~” 하고 운을 떼면 둘째가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받아치는 식이다. 첫째에게도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많은데, SNS를 포함한 어디에서도 자기 얘기를 하지 말라! 경고 같은 부탁을 해서 생략. 그 많은 바람과 걱정 끝에 결론처럼 남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나나 잘하자’ 하는 다짐이요, 또 하나는 ‘집에서라도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밖에서는 울고, 깨지고, 좌절하고, 주저앉아도 집에서만큼은 편안하고 아늑하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면 좋겠고, 그런 마음에서 음식도 열심히 하고, 청소기도 열심히 돌린다. 집에서 행복한 사람은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

손명희 대표가 집을 옮기기로 했다며 안부 전화한 날을 기억한다. 아파트에서 살던 그녀는 집과의 인연이 다했다고 생각했는지 1년여 전, 성북동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감행했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마디마디 제대로 지어 오래된 기품이 느껴지는 이층집이다. 내 동선이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집을 단장하고 세팅하는 것이 워낙에 중요한 사람이라 집 단장을 마무리하는 시점도 빠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늦어졌다. 그간 그녀는 답답하고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한 점 한 점 정성껏 골라 평생 함께할 거라 생각한 가구와 조명, 그리고 그림이 새집과 어우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검은색 LC2 3인용 소파는 버터색 토고 소파로 바뀌었다가 다시 제르바소니 고스트 시리즈로 교체했다. 아끼던 샤를로트 페리앙 식탁과 에로 사리넨 타원형 테이블을 내놓고 독일 출신의 가구 디자이너 라이너 다우밀러Rainer Daumiller의 원목 제품을 새로 들였다. 두툼하고 단순한 형태가 매력적인 제품이다. 주물로 만든 금속 계단이나 어두운 색깔의 바닥재가 뿜어내는 터프한 기운을 중화하기 위해 잉고 마우러의 조명도 곳곳에 설치했다. 독일 출신의 이 디자이너는 전구電球를 “시詩와 기술의 이상적 공생”이라 정의했는데, 이는 본인 디자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기도 해서 그의 작품을 보면 늘 시와 과학이 동시에 떠오른다.
“집에 따라 이상적 가구와 조명의 조합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이번에 실감했어요. 예전 집은 해가 잘 들고 빈 벽이 많아 인물화가 잘 어울렸어요. 그 집과 비교하면 이곳은 해가 부족한 데다 공간이 두 개 층으로 나뉘니 빈 벽도 많지 않아 인물화가 빛을 발하지 못하더라고요. 르코르뷔지에 소파도 너무 사무적이고 딱딱한 느낌이 들고요. 묵직한 집 안 분위기를 화사하고 부드럽게 바꾸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어요.”

위트도 곳곳에서 보인다. 상부등이 있는 천장틀 한쪽에 아들의 장난감 자동차를 살짝 올려놓고, 다용도실에는 언젠가 여건이 되면 꼭 키우리라 다짐 중인 강아지를 대신해 나무로 만든 인형을 가져다 두었다. 밥그릇까지 한 세트로. 다용도실을 보고 “왜 이렇게 넓어요?” 하고 놀랐는데 한쪽 벽면 전체를 유리로 마감한 덕분이다.
“이전 집 서재에 비초에 선반을 두었는데, 이 집에 가지고 오니 둘 곳이 마땅치 않은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다용도실 벽면에 설치했는데 너무 슬픈 거죠.(웃음) 반대쪽 장에 유리를 대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빛이 귀한 아래층 벽면도 고민이었다. 빛이 없으니 어떤 그림을 걸어도 빛나지 않았고, 고심하다 3m 넘게 쭉 이어지는 나무 옷걸이를 걸었다. 셀렉트 숍 인포멀웨어에서 셰이커 박스를 만드는 업체에 부탁해 맞춤 생산한 제품으로 북유럽의 어느 가정집에 걸린 것처럼 따스한 질감이다.

바지런한 생활과 리듬으로 아름다운 집
주방에도 일상의 감각이 넘친다. 고목 느낌의 건식 무늬목으로 몸체를 만들고 그 위에 천연 대리석 상판을 올린 크고, 번듯한 조리 테이블이 있는 공간.
“주방에서 제일 신경 쓰는 것이 동선이에요.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이 딱딱 맞춰서 들어가지 않으면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면서 보여준 곳이 라마르조꼬 에스프레소 머신을 올려놓은 아일랜드 테이블.
“커피숍에 가면 분쇄한 원두 가루가 날리지 않게 탬퍼로 꾹꾹 누르잖아요. 그런 다음 원두 가루를 사각 통에 버리고요. 이때 동선이 부드럽게 이어져야 해서 바로 뒤쪽 대리석 상판을 파 사각 통을 매립할 수 있게 했어요. 커피를 내린 후 홱 돌아 찌꺼기를 버릴 수 있게 한 거죠. 커피 머신 바로 밑 수납함에는 쓰레기통을 두고요.”

주방에는 크고 작은 수납장이 곳곳에 가득했는데, 수저와 포크부터 각종 주방 도구까지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착착 정리돼 있었다. 옆 선반에 걸려 있던 바나나를 가리키며 그녀가 한 말.
“바나나를 이렇게 고리에 걸어서 매달아놓으면 바나나 스스로 아직 나무에 매달려 있다고 생각해서 갈변이 더디대요.(웃음)”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하기 전 그녀의 직업은 푸드 스타일리스트였다. 요리와 주방이 좋아 대학 졸업 후 캐나다 밴쿠버로 날아갔고 그곳에서 한 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 돌아와 레스토랑 주방에서 설거지부터 시작했어요. 식당은 규율과 서열이 엄격한 곳이에요. 막내는 설거지를 하고 조금 경력이 쌓이면 감자 깎기 같은 식자재 밑손질을 하지요. 또 경력이 쌓이면 샐러드 같은 콜드cold 음식을 만들고, 마지막에 파스타나 스테이크를 담당해요. 하루는 딸을 보러 부모님이 오셨는데, 사장님이 배려를 해 주신다고 제게 서빙을 맡겼어요. 그런데 제 꼴이 말이 아니었던 거죠.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고 앞치마는 더럽고…. 그 모습을 보고 엄마가 일주일간 우셨대요. 하지만 저는 정말 재미있게 일했거든요. 브레이크타임 때도 레시피를 정리하고 머릿속으로 복습하기 바빴지요. 20대 때에는 이런저런 고생과 경험을 많이 하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에요. 하나도 버릴 게 없어요.”

푸드 스타일링을 하다 리빙 스타일리스트로 직업을 전환한 데는 엄마의 영향이 컸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집을 사랑하는 엄마의 삶과 태도.
“나란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알게 됐어요. 지금의 나는 내가 잘해서 자동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다 부모님에게 받은 것으로 완성된 것이라는 걸요. 엄마는 밖에서 일을 하고 들어와서도 집에서 늘 바빴어요. 쓸고, 닦고, 가꾸고, 요리하고. 퀼트도 즐겨 하셨고 베이킹도 좋아라 하셨어요. 새로운 문화에도 관심이 많아 미제나 일제 물건에 밝으셨고 지인의 멋진 공간이나 집에 다녀오시면 꼭 저를 다시 데려가 주셨습니다. 지금도 우리 가족이 내려가면 삼시 세끼 맛있는 거 해주시느라 바빠요. 그런 게 아직도 너무 재미있으시대요. 언젠가는 소창 수건과 행주를 가득 보내주시면서 손 편지를 동봉하셨어요. 처음 사용할 때는 뻣뻣해 물기도 잘 흡수하지 못하지만 열심히 삶아가며 쓰다 보면 부들부들 흡수력도 좋아지고 점점 더 소중한 존재가 되어간다고. 그것이 살림이나 삶과도 통하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지요. 엄마와 아빠는 집을 참 좋아하신 것 같아요. 철마다 패브릭이며 가구와 조명의 위치를 바꾸고 접해보지 못한 것, 새로운 것에도 열려 있었어요. 살림은 엄마 몫이었지만, 아빠는 그런 엄마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셨어요. 뭘 산다고 해도 반대를 하지 않으셨지요.(웃음) 결정하는 마음을 키워준 것도 부모님이에요. 초등학교 5학년때 였을 거예요. 빈티지 가구점에 저를 데려갔는데, 물건을 골라보라고 하시더니 제가 고른 걸 실제로 사셨어요. 최근 엄마 집에 내려가 제 초등학교 시절 그림일기를 봤는데 친구 집 부엌을 촘촘하게도 그려놨더라고요. 딸은 엄마가 좋아하는 공간을 함께 좋아하는 존재 같아요.”
손명희 대표가 열심히 가꾼 집을 빠져나오면서 집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 자체로 얼마나 복된 것인지 잠시 생각했다. 우리 아이들도 집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크면 좋겠다고 또 잠시 생각했다. 라이크라이크홈…. 되뇔수록 마음 한쪽이 기분 좋게 부풀어 오르는 이름이자 구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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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박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