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사람
전규석·지성은 부부
전규석·지성은 부부는 2021년 여름, 주택 청약에 당첨되며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아파트 청약이나 분양 등 다양한 정보를 찾아보다 마이너스 옵션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다고. 마이너스 옵션을 선택하면 아파트 골조 공사와 외부 미장, 마감만 마친 세대를 분양 받을 수 있다. 인테리어 공사를 전혀 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분양가가 낮으며 입주자가 직접 업체를 선정해 취향에 맞는 디자인을 시공할 수 있다. 새 아파트의 인테리어 공사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선택지인 셈.
전규석·지성은 부부는 청약 당첨 사실을 알고 고작 석 달이 지났을 즈음 논텍스트NONTEXT에 설계를 요청했다. 입주일이 2024년 6월임을 고려하면 너무 빠른 시작이었기에 본격적인 논의는 2023년 겨울부터 진행했다고.
“첫 미팅 때는 아직 평면조차 나오지 않은 시기였기에 구체적 논의를 할 수 없었어요. 미팅을 마치면서 대표님이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보다 집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생각해보라고 말씀해주신 게 기억에 남아 두 번째 미팅 때는 아이가 성장했을 때의 상황도 포용할 수 있는 집이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죠.”

전규석·지성은 부부가 원하던 여유는 공간의 유동성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요리, 만들기, 사진, 음악, 영화 등 취향이 뚜렷할 뿐 아니라 독특한 구조를 따라 가족이 함께하는 삶으로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을 바란 것. 첫 만남부터 정한 대표에게 백색의 단색 집이 싫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히 흰색이 싫었다기보다는 당시 아파트 인테리어를 검색하면 주로 나오던 올 화이트 톤의 천편일률적인 공간을 원치 않는다는 뜻이었다.
“전세살이를 하며 바탕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우리의 취향이 아닌 마감재와 컬러로 완성된 공간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저희 가족의 색이 돋보이지 않더라고요.”
구체적 컬러나 소재는 정한 대표에게 맡겼다. 평소 좋아하던 베이커리 카페를 설계한 곳인 논텍스트를 찾아간 것이었기에 세세한 디렉션을 요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그렇게 완성한 공간은 마룻바닥에 아이보리빛 벽으로 담백하지만 곡면 벽이나 안방, 신발장에 우드 블록을 심은 듯한 임팩트 요소를 담아 단조롭지 않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가족의 변화무쌍한 일상.
“오늘은 이 문을, 내일은 저 문을 열고 닫으며 매일 다른 구조로 살아보고 있어요. 특히 딸 버들이가 가장 공간을 잘 즐기고 있는데, 통로를 지날 때면 항상 ‘나는 여기로 갈 테니까 아빠는 저쪽으로 가. 곧 만나자, 안녕’이라며 자신만의 놀이까지 만들었답니다. 우리답게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시작한 일이 이렇게 다른 일상과 만족감, 행복으로 돌아와 하루하루가 즐거워요.(웃음)”
매일이 새로운 집. 가족이 지금 집에 이사 온 지 이제 반년이 지나는 중인데, 그새 딸 버들이는 처음보다 많이 자라 탐험하듯 몸을 숨기던 거실의 책장 아래 빈 공간이 좁을 정도라고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멀티룸의 책상 아래로 뛰어갈 수 없을 만큼 키가 자랄 테고, 전규석·지성은 부부의 취미를 함께 즐기는 일을 넘어 확고한 본인의 세계를 집에 더해갈 것이다. 그때 이 집의 모습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앞으로 펼쳐질 모습이 기대된다.
지은 사람
논텍스트 정한 대표
정한 대표는 집이 가족과 함께 자라기 위해서는 공간에도 구성원의 변화를 품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부터 독립, 심지어는 먼 미래에 부부가 노후를 즐길 때까지 총체적 가족 생활 주기와 그때마다 필요한 집의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스터디했다.

“아이디어의 시작은 어디에도 문을 달지 않은 뻥 뚫린 공간이었어요. 여기에 구성원의 상황에 따라 필요한 공간을 떠올리며 영역을 다듬어갔죠. 지금은 아이가 어리니 언제나 부모 눈에 보일 수 있게 모두 열린 구조가 좋지만, 딸 버들이가 학교에 가면 공부할 곳이, 사춘기가 시작될 즈음이면 완벽히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방이 필요할 거예요. 그래서 각 영역에 별도의 목적을 지정하지 않았어요. 최소한의 벽만 세우고 포켓형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상황에 따라 문을 열고 닫으며 매번 새로운 평면을 만들 수 있는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주거 공간의 중추인 거실과 주방만 정한 뒤 아이 방부터 멀티룸, 안방까지 가족의 상황에 따라 용도를 바꿀 수 있는 자유를 준 것이다. 여기서 예상할 수 있듯, 자유로운 영역 설정의 구심점은 멀티룸이다. 본래 알파 룸으로 구획되어 거실 쪽에만 내력벽이 세워진 상태였는데,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으면서 개방감도 느껴지도록 아이 방 쪽 수납장과 내력벽을 목재 패널로 이어 테이블을 만들고 현관 쪽으로는 벽 없이 열어두었다.
아이에게 더 넓은 개인 공간이 필요해지면 멀티룸에 책장이나 문으로 벽을 세워 두 영역을 모두 내어줄 수 있도록 계획했다.
전문가 소개
정한 논텍스트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논텍스트를 이끌고 있다. 콘텐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natural context라는 이름의 뜻처럼 공예적 접근을 기반으로 한 자연스러운 맥락의 공간을 만든다. 대표 프로젝트로는 가수 오혁의 집, 래퍼 키드밀리의 집, 무신사 스탠다드 서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