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는 방, 주방, 거실이라는 구역이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다. 꼭 그래야 할까? 샐러드보울 스튜디오의 구창민 대표는 아파트 레노베이션을 하기 전 기존 통념을 뜯어보고 해체한다. 그 과정의 끝에 다다른 뒤에 이 집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이 집에 적용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파악한다. 집주인을 위해 새롭게 만든 경희궁의 아침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끝에 아파트라는 오늘날의 주거 형태에서 한옥의 구조와 가능성을 발견해 작업한 사례이다. 17평짜리 아파트가 한옥의 정취를 담아가는 과정을 취재했다.
고친 사람 이야기
구창민 샐러드보울 스튜디오 대표
틀린 그림 속에서 발견한 유사성
이장욱의 단편소설 ‘광장’에는 창공에 널린 구름을 보고 코끼리의 모습을 떠올리는 ‘김수’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눈에 구름은 수증기와 먼지의 집합체가 아닌, 하늘을 초원 삼아 걸어가는 하나의 생명체에 가까웠다. 동물動物을 직역하면 ‘움직이는 물체’이니, 유유히 부유하는 구름을 보고 코끼리를 상상한 접근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가 구름을 보고 코끼리를 떠올리는 건 아니다. 다만 전혀 다른 사물 속에서 유사성을 도출하는 일은 소설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 하나, 거실 하나로 구성된 17평 아파트와 조우한 순간 샐러드보울의 구창민 대표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언젠가 찾아간 북촌 어느 한옥에서의 기억이 선연하게 떠오른 것. 분명 색도, 재료도, 형태도 규모도 전혀 달랐다. 같은 그림보다 틀린 그림 찾기가 손쉬울 정도로 둘은 닮은 구석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자꾸만 한옥의 정취가 코끝을 간지럽히는 듯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구조가 조금 독특했어요. 거실이 방을 껴안은 형태였는데, 이런 대칭적이지 않은 형태는 뭐랄까, 위치를 바꿔가며 움직일 때마다 보이는 장면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그것이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던 어느 한옥을 떠오르게 한 것 같아요. 안에서 보이는 바깥 모습과 외부에서 바라본 한옥의 풍광. 신기하게도 그게 생각나더라고요.”

집주인의 동선을 따라 그린 도면
마침 집주인의 성향도 상상 속 그림과 묘하게 어울렸다.
“집주인은 좌식 문화에 익숙한 분이에요. 침대 대신 이부자리를 펴고 주무시고요. 집에 있을 때는 주로 거실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하셨죠.”
돌돌 말린 회권(종이를 펴가면서 그림을 감상하는 두루마리)을 펼쳐 가며 눈에 보이는 장면을 따라가는 것처럼, 그는 집주인의 평소 모습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새 집 모습을 상상했다. 손에 잡히는 분명한 무언가는 없었지만, 그런 삶의 모습이라면 한옥이 머금은 분위기와 제법 잘 어울릴 거라는 확신만큼은 명확해졌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침대를 사용하지 않는 집이라면 방의 여백을 조금 줄여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구창민 대표는 이에 따라 재배분이 필요하다 판단해 기존 방이 차지하던 공간을 소폭 줄이기로 결정했다.
대신 거실에 보다 힘을 실었다.

“평소 집을 찾는 손님들과 거실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차를 즐기는 분이셨어요. 무엇보다 좌식 생활에 익숙한 분이다 보니 자연스레 평상이 떠올랐죠.”
여기에 집주인이 오랜 시간 모아온 작고 아담한 공예품을 올려놓을 선반도 마련했다. 거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집주인의 특성을 고려해 보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의도한 부분이다.
그즈음부터 이런 것을 상상했다.
“방에 앉았을 때 바라보이는 거실 느낌을 좀 상상해보기도 하고, 거실에 앉았을 때 방을 바라보는 느낌을 상상해보기도 했어요. 그게 뭐랄까, 한옥에서의 방과 대청마루가 맺는 어떤 관계들을 떠오르게 하더라고요. 이 집도 방문을 여닫을 수 있게 만들면 거실도 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집의 문은 문이 아닌 하나의 통로 역할을 하게끔 연출했어요.”
이를 통해 방문을 열면 거실이 방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거실이 주방의 연장이 되는 공간의 관계성을 만들었다.

한편 개선이 필요한 문제를 발견하면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적용했다.
“화장실이 꽤 좁았어요.”
그래서 복도를 지나 화장실로 향하는 길목의 틈새로 세면대를 끄집어냈다.
“화장실의 세면대를 바깥으로 빼놓고 복도와의 연결성을 활용했어요.”
방과 거실의 비율을 배분하는 것처럼 화장실의 기능적 요소를 배분하는 방식으로 확장을 도모한 것이다. 이 외에도 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곳곳에 매입할 수 있는 수납장을 만들어 해결했다.
디자이너가 보기에 아파트 레노베이션에서 중요한 건 무엇일까? 구창민 대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 그리고 계속 질문하는 것을 꼽았다.
“처음부터 무언가를 염두에 두고 풀려고 하지 않아요. 허물 수 있는 생각은 허물어보려고 해요. 가능성을 열어두는 거죠. 그리고 계속 질문해요. ‘왜 이래야만 하지?’라는 질문을 던지며 매번 달라지는 집의 형태에 맞춰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찾아가요. 이 집의 경우 주어진 구조를 그대로 사용했다기보다는 ‘주방과 거실이 좁은 공간에 이렇게 딱딱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어야 하나’라는 질문을 따라가다가 방향을 잡은 것이었어요. 여러 공간이 하나의 공간으로 여겨져도 된다는 생각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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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소개
구창민 샐러드보울 스튜디오
샐러드 보울 스튜디오는 구창민 대표가 2014년 설립한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집에서 느끼는 편안하고 단순한 감각을 디자인 언어로 삼는다. 주거 공간으로 시작해 상공간, 미술관 등 다양한 공간을 넘나들며 샐러드보울 스튜디오만의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