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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것을 최선이라고 믿지 마세요. 유일한 해결책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질문하세요.” 건축가 최문규가 지난 6월 교수 퇴임을 기념해 열린 강연의 마지막에 건넨 말이다. 그날 강연 제목은 ‘건축의 질문들’. 지난 시간을 회고하는 자리에서도 그는 그간의 성취를 돌아보기보다 지금껏 품어온, 그리고 여전히 자신에게 화두가 되는 질문을 꺼내놓았다. 지난 30년간 건축가 최문규의 프로젝트는 늘 ‘이것이 우리에게 유일한 해결책은 아닐 것’이라는 의심, 그리고 “왜 그래야만 하지?”라는 질문에서 비롯됐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인사동 쌈지길은 “인사동은 사람들이 거리를 걸으려고 오는 곳인데, 그럼 길을 건물 위로 올릴 수는 없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했다. 그는 인사동 골목길의 폭과 길이를 하나하나 조사하고, 거기서 발견한 규칙을 건축 안으로 끌어들였다. 사람들은 완성된 건물을 상업 시설이 아니라, 거리이자 공공장소로 받아들였다.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는 “아무리 멋진 건물을 지어도 한강 너머까지 펼쳐지는 풍경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닫혀 있던 도시를 잇고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 건물 한쪽을 아예 비웠다.
두 건축은 명료하다. 강렬한 형태나 주목할 물성 대신 하나의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이며, 건물 사용자뿐 아니라 그곳을 지나거나 마주치며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이들까지 배려하는 건축. 이를 위해 건축가는 자신이 설계한 건물이 보이지 않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건축가인 그의 지인은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를 보고 “왜 건물이 완공이 안 되냐? 저기는 왜 유리를 안 달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대단한 건물을 지은 게 아니라 그저 공간을 내주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간결한 생각은 무수한 미사여구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생각해요. ‘뭘 하면 완전히 새로운 건물이 될 수 있을까? 새로운 삶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를 없앤다고 하면 사람들이 싫어할 거예요. 그 옆 건물은 없어져도 눈치도 못 챌 테지만요. 그렇다는 건 그만큼 세상을 조금은 바꿔놓은 거거든요.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거였네?’ 그리고 ‘이것이 없는 세상은 조금 불편한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
“Never assume you have found the best solution. Keep asking questions.” Architect Choi Moon-gyu offered these parting words at a lecture marking his retirement from teaching last June. Entitled “Questions of Architecture,” it reflected a practice shaped by thirty years of asking, “Why must it be this way?” At Ssamzigil in Seoul’s Insadong, he drew the neighbourhood’s streets up through the building, turning a shopping complex into an extension of the public realm. At Hyundai Card Music Library, he left one side open to frame views across the Han River, choosing to make room for the city rather than compete with it. Neither project relies on dramatic form. Instead, each carries a single idea through with clarity and conviction, considering those who pass by as carefully as those who enter. Choi’s ambition is simple: to reveal new ways of living through places that, once built, become difficult to imagine living without.


박서보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고, 동시대 미술과 대화를 이어가고자 설립한 미술관. 도로에서 한 뼘 물러나고 모서리를 비워낸 건물은 주변을 한층 밝게 만든다. 투명하게 열어낸 1층에서는 실내 전시와 활동이 외부로 드러나고, 정원과 연결한 전시장 여섯 개는 서로 다른 규모로 계획해 다양한 성격의 전시를 유연하게 수용한다.

땅에 맞는 건축을 짓던 선조의 지혜에서 출발한 미술관. 대지의 형태와 식생을 살펴 땅을 가장 적게 훼손하는 모습으로 자리 잡고, 대구의 상징적 장소인 팔공산 풍경을 조망하는 곳이 되고자 했다. 미술관 지붕과 외부 공간은 미술관이 문을 닫은 때에도 시민이 이용하는 공원의 일부가 된다.


의학도서관과 연구·교육 시설, 대강당이 공존하는 도서관. 이를 세 개의 볼륨으로 구분하고, 내부 공간을 연결하는 형태로 설계했다. 기둥이 없고 층고가 높은 유리 건물에 자리한 대열람실은 남측 숲을 향해 투명하게 열려 있다. 환하게 불을 밝히고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그 앞을 지나는 환자와 가족에게 희망이 되기도 할 것이다.

바이닐과 희귀 음반을 청음할 수 있는 음악 전문 도서관. 남산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경사지에 자리해 멀리 관악산까지 탁 트인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도시의 틈’처럼 비워낸 공간을 계획해 건물 안에서는 볼 수 있지만 보행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던 풍경을 선사하고, 서로 만나 잠시 쉬어가는 열린 공공장소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연세대학교의 중요 녹지 공간인 청송대와 가까운 언덕에 자리한 건물. 기존 땅의 높이를 살리면서 건물 네 채가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다. 석재·벽돌·목재·유리·산화 동판 등 각기 다른 재료로 마감하고 서로 다른 높이와 모양으로 계획해 여러 건물의 집합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한국 학생에게 주거 공간을 제공하고, 전 세계 유학생과 교류할 수 있도록 설립한 기숙사. ‘은자의 나라’에서 ‘열린 대한민국’이 되어가는 한국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로비와 식당, 방이 마주 보는 공원을 향해 투명하게 열리도록 계획했다. 공동 테라스와 정자는 건물 내부이면서 외부가 되어 학생들의 교류를 돕는다.
“제 질문은 대부분 일상의 의문에서 시작돼요. 그 질문을 잘 품고 있다가 기회가 왔을 때 건축으로 풀어내는 거죠.”
1999년 가아건축을 개소한 뒤 지금까지 건축가로 활동해왔습니다. 사무소를 시작할 당시에는 어떤 건축가가 되고 싶었나요?
건축가로 어떤 작업을 꼭 해보고 싶다는 건 없었어요. 나 혼자보다는 여럿이 같이 일할 때 더 잘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죠. 내 건물만 예쁘면 되는 건축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성실함이나 상식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요. 성실하다는 건 비슷비슷하게 매일 하는 거거든요. 제가 설계한 건물도 그렇지만, 저는 삶도 굉장히 재미없고 루틴에 맞추어서 살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지금처럼 양복을 입고 비슷한 시간에 출근해 일합니다. 건축가 중에서는 이제 이렇게 양복 입는 사람도 드문데.(웃음) 퇴근하면 집에 돌아가 밥 먹고 개와 산책하고, 책 보고, 가끔 영화도 보고요. 지루하고 성실하게 살아요.
교수님의 건축도 어딘가 성실함을 닮은 것 같아요. 땅에 뿌리내리고 사람을 받아들이는 건축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많은 관련이 있어요. 초등학교 때 살던 동네에는 놀 데가 골목밖에 없었어요. 거기서 놀면 앞집 아저씨가 시끄럽다고 화를 내곤 했죠. 놀이터가 없는 동네라 갈 데도 없었는데…. 어리지만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 사람들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기억이 모여 지금 같은 건축을 하게 됐어요. 저는 민주적인 사회가 좋아요. 민주주의는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 여러 답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투명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아파트에 담장을 치는 이유는 우리는 우리끼리 살고 싶다는 뜻이잖아요. 그와 정반대 생각을 담은 게 제 작업이에요.
말씀하신 것처럼 교수님의 건축은 투명하고 열린 모습으로 주저 없이 배경이 되기를 택합니다. 건축가로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텐데, 이러한 방향을 꾸준히 밀고 나갈 수 있는 뿌리는 무엇인가요?
‘어떻게 하면 사회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볼 수 있을까?’ 같은 생각에 관심이 많아요. 다른 건축가들이 감각에 좀 더 집중한다면 저는 생각에 의지해서 짓는 쪽이에요. 꼭 멋있지 않더라도요. 붉은색 벽돌 여러 가지를 놓고 ‘뭐가 더 좋아?’를 비교하는 세계보다는 ‘학교라는 유형을 처음 생각한 사람은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교실 크기는 왜 이 정도일까? 복도는 왜 한쪽에 두었을까? 쉬는 시간이 10분인데, 복도 끝 화장실에 갔다 오면 그 시간이 다 지나가게 만드는 이 시스템은 대체 뭘까?’ 같은 것에 더 관심이 가는 거죠. 건축에서 그러한 것이 한번 규칙으로 정해지면 대개 관성처럼 반복됩니다. 교실 크기는 가로 9m에 세로 9m, 복도 폭은 2.4m 같은 규칙을 따르다 보면 교실 옆에 복도가 있고, 양 끝에 계단이 있는 전형적인 학교를 계속 짓게 되는 거예요. 저는 그때 “왜 이렇게 해야 해?”라고 질문하고 싶은 거죠. 이런 질문을 던지다 보면 ‘건축이 삶을 조직하는 하나의 기구구나. 그럼 이 질서를 느슨하게 만들거나 교란하면 지금까지와 다른 삶도 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건 그런 일이에요.
최근 개관한 박서보미술관도 일반 갤러리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모든 층에 정원이 있고, 1층은 길을 향해 열려 있어요.
미술관이 자리한 곳이 좁은 뒷골목이라 투명하게 열려 있어 저녁에 거리를 지나는 사람에게 밝은 모습으로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하에도 정원을 둔 것은 ‘오늘 하늘이 이런 색깔이네, 이런 계절이네’ 같은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게 건축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였고요. 로마의 판테온에 가면 천장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하늘이 보여요. 매일 곁에 있는 하늘을 작은 틈을 통해 바라보면서 새삼 그 존재를 느끼게 되죠. 마찬가지로 매일 보는 풀이고 햇빛이지만, 지하 2층에서는 그 감각을 훨씬 깊이 되새기게 됩니다. 본래 목적인 그림에 집중하는 환경도 중요했습니다. 다양한 규모의 전시장을 여러 개의 박스 형태로 구성해 알 수 없는 재료나 모호한 형태보다는 쉽고 명료하게 읽히도록 했어요.
지난해 문을 연 대구간송미술관도 풍경을 향해 열린 제스처를 취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접점이 있습니다.
설계를 시작할 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땅입니다. 간송미술관은 주어진 땅의 이치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처음 부지를 봤을 때 대구에서 중요한 장소인 팔공산이 쫙 펼쳐지는 풍경을 사진으로 담으며 생각했어요. 여기엔 건물보다 저 풍경을 보는 토대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구나. 그런 이유로 풍경을 보는 집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런 과정을 거쳐 건물이 묻혀 있고, 거대한 파사드나 홀 대신 조그마한 쪽문으로 들어가 나지막한 매표소를 지나는 시퀀스가 탄생했습니다.
최근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도, 오늘 인터뷰에서도 계속 호기심과 질문을 강조했습니다. 요즘 스스로에게 중요하게 던지는 건축적 질문은 무엇인가요?
대단한 건 없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좀 더 호기심을 갖고 자세히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파트 평면을 보면 큰방과 작은방이 있어요. 방 크기가 똑같으면 싸울 일이 없는데 이상하죠.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아요.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같은 관념에 의해 만들어놓은 룰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건축화돼 있어요. 제 질문은 대부분 이런 일상의 의문에서 시작돼요. 그 질문을 잘 품고 있다가 기회가 왔을 때 풀어내는 거죠.
이제 교육자로서 시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막이 시작됩니다. 앞으로 또 어떤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나요?
지금까지와 비슷하게 흘러가면 좋겠어요. 함께 시간을 보낸 학생들과 제자들이 좋은 건축가가 되어 좋은 건축을 하면 좋겠고, 저도 뒤처지고 싶지 않으니까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성실하게, 상식적으로.
전문가
최문규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컬럼비아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토 도요 건축사사무소와 한울건축에서 실무를 쌓았으며, 1999년부터 가아건축사사무소와 함께 작업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로 20년간 재직했고, 현재는 명예교수다. 대표작으로 인사동 쌈지길,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숭실대학교 학생회관, 대구간송미술관, 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 박서보미술관 등이 있다. gaa-a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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