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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S
콜로세움을 지킨다는 것은 이탈리아를 지키는 일
2011년 토즈 그룹은 로마의 상징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콜로세움을 복원하는 데 약 2천5백만 유로를 후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당시 이탈리아 민간 기업이 추진한 문화재 후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프로젝트였다. 토즈의 디에고 델라 발레Diego Della Valle 회장은 이를 “경제적·상업적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메세나 활동”이라고 설명하며,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투자야말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후원 계약에는 일정 기간 콜로세움 이미지 활용과 후원 사실 표기 등 후원사에 부여하는 권리가 포함됐고, 이 프로젝트는 민간 기업의 문화재 후원과 공공 유산 관리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는 순수한 문화 후원과 브랜드 파트너십의 경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한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


복원 계획은 단순한 외벽 정비에 그치지 않았다. 북측과 남측 외관, 내부 회랑과 지하 공간 복원, 설비 개선, 새 방문객 서비스 센터 조성까지 콜로세움 전체를 단계적으로 정비하는 장기 프로젝트로 설계했다. 동시에 연간 수백만 명이 방문하는 세계적 유적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공사 기간에도 계속 관람할 수 있도록 공사 구간과 일정을 세밀하게 계획했다. 1단계에서는 오염된 트래버틴 외벽을 친환경 미세 분무 방식으로 세척하고, 균열과 손상 부위를 보수했다. 비계에 가려져 있던 아치 다섯 개가 처음 공개되던 날, 반세기 가까이 매연에 그을려 있던 석재는 원래의 아이보리빛을 되찾은 채 로마의 오후 햇살 아래 드러났다. 검게 그을린 유적처럼 보이던 콜로세움이 순간 완전히 다른 건축물처럼 느껴졌다는 당시 기록은 복원이 단순한 재정비가 아니라, 도시의 인상을 새롭게 만드는 작업이었음을 보여준다.
2018년 12월부터는 내부 회랑과 지하 공간 복원이 진행되었으며, 수 세기 동안 일반에 공개하지 않던 공간이 점차 시민에게 개방되기 시작했다. 지하 검투사 대기실과 무대장치가 오르내리던 통로를 잇는 목재 보행로를 설치했고, 이 구간은 이후 몇 해에 걸쳐 완성돼 2020년대 초중반에 이르러 전체 구간이 대중에게 순차적으로 공개되고 있다. 토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비영리 단체 ‘아미치 델 콜로세오Amici del Colosseo’를 설립해 청소년과 시민이 문화유산을 더 가까이 경험할 수 있는 교육 활동까지 계획했다. 하나의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 10년 넘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은 도시의 시간을 보존하는 일이 얼마나 긴 호흡을 요구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말할 때 사람들은 흔히 장인의 기술과 아름다운 제품만 떠올린다. 토즈는 그 개념을 한 단계 확장했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는 공장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역사 및 문화유산을 함께 지켜낼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콜로세움은 단순히 로마의 유산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이어질 이탈리아의 미래다. 토즈가 복원한 것은 거대한 원형경기장이 아니라, 한 나라가 자국의 역사와 관계 맺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런 프로젝트는 민간 후원과 브랜드 가치 활용이라는 두 측면을 동시에 지닌다. 브랜드가 국가 문화유산을 단순한 이미지 자산이 아니라, 미래 세대와 공유해야 할 공공 가치로 바라보았다는 점이 가장 주목할 부분이다. 취재 협조 토즈(tods.com)
BVLGARI
스페인 계단을 복원한다는 것은 도시의 기억을 지키는 일

도시는 하나의 건축물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광장과 계단, 사람들이 걷고 머무는 공공 공간이 도시의 인상을 만든다. 로마의 스페인 계단Scalinata di Trinità dei Monti은 바로 그런 장소다. 1723년부터 1726년 사이에 조성한 이 계단은 〈로마의 휴일〉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와 예술 작품의 배경이 되었으며, 로마를 대표하는 도시 풍경이자 시민의 일상과 관광이 만나는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2014년 불가리는 브랜드 창립 1백30주년을 맞아 스페인 계단 복원에 약 1백50만 유로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건축가 프란체스코 데상크티스Francesco De Sanctis의 설계로 조성한 이 계단은 오랜 풍화와 오염으로 석재가 손상되고, 균열이 진행되고 있었다. 복원은 로마시와 문화유산 당국의 감독 아래 약 10개월간 진행했으며, 2016년 9월 시민에게 다시 공개됐다.

복원한 목적은 장기간 축적된 오염을 제거하고, 균열을 보수하며, 배수 시설을 개선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계단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었다. 기존 석재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구조적 안정성을 회복한 이번 복원은 문화재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시간을 잇는 작업이었다. 불가리가 스페인 계단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창립자 소티리오 불가리Sotirio Bulgari는 1884년 로마의 비아 시스티나Via Sistina에 첫 매장을 열었다. 스페인 계단 바로 아래로 이어지는 이 골목에서 브랜드 역사가 시작됐고, 이후 매장은 스페인 계단과 마주한 비아 콘도티Via Condotti로 옮겨와 오늘날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불가리에 스페인 계단은 브랜드가 탄생한 비아 시스티나와 오늘날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결하는 장소이자 브랜드 역사의 중심축이다. 불가리 CEO 장크리스토프 바뱅Jean-Christophe Babin은 이번 프로젝트를 “브랜드 1백30주년을 맞아 로마에 바치는 헌사”라고 표현하며, 로마의 예술과 건축 유산은 언제나 불가리 컬렉션의 가장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설명했다.

불가리는 2019년 약 1백만 유로를 추가 지원해 로마의 또 다른 상징인 라르고 디 토레 아르젠티나Largo di Torre Argentina 유적지 복원과 관람 동선 개선 프로젝트를 후원했다. 기원전 공화정 시대 신전 유적과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현장으로 알려진 이 고고학 공원은 새 보행로와 접근 시설을 갖춰 2023년부터 단계적으로 공개됐다. 문화유산 보존을 넘어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도시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다. 스페인 계단은 여전히 매일 수많은 사람이 오르내린다. 대부분은 그 계단이 복원됐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브랜드보다 여전히 아름다운 로마를 기억한다. 불가리가 남긴 것은 새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의 시간이 계속 흐르도록 한 조용한 개입이다. 취재 협조 불가리(bulgari.com)
FENDI
트레비 분수를 되살린다는 것은 로마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

로마는 물의 도시다. 골목 어디에서나 만나는 크고 작은 분수는 이 도시가 수천 년 동안 물을 다뤄온 방식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중에서도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는 단연 로마를 상징하는 장소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아니타 에크베리가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채 분수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장면 이후, 이곳은 전 세계 여행자가 동전을 던지며 로마 재방문을 기원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 겨울, 유난히 혹독한 한파가 지나간 뒤 일부 석재가 떨어지면서 복원 필요성이 다시 공론화됐다. 1732년 교황 클레멘스 12세의 명으로 니콜라 살비Nicola Salvi가 설계해 착공한 이 바로크 양식 분수는 3백 년 가까이 로마의 습기와 관광객의 손길을 견뎌온 끝에 본격적 복원이 필요한 상태에 이르렀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로마시는 민간의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응답한 곳이 로마에서 태어난 브랜드 펜디였다. 2013년 1월, 펜디는 트레비 분수를 포함한 로마의 분수를 장기적으로 복원·보존하기 위한 ‘펜디 포 파운틴스Fendi for Fountains’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첫 단계인 콰트로 폰타네Quattro Fontane 복원은 그해 3월 32만 유로 규모로 먼저 마무리됐고, 이어 트레비 분수 복원에 약 2백20만 유로를 후원했다. 예정보다 일찍 공사를 마친 뒤 2015년 11월 3일 트레비 분수에는 다시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공사하는 동안 분수는 비계와 가림막에 덮여 있었지만, 로마 문화유산관리청Sovrintendenza Capitolina은 니콜라 살비의 원래 도면을 바탕으로 투명 패널로 된 파노라마 보행 덱을 설치했다. 덕분에 시민과 관광객은 복원 현장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평소 볼 수 없던 방향에서 트레비 분수를 경험했다. 2015년 11월, 마침내 물이 다시 뿜어져 나오는 순간을 지켜보려고 로마 시민과 관광객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17개월 만에 처음 흐르는 물줄기 앞에서 사람들은 휴대폰을 꺼내 그 모습을 담았고, 몇몇은 오래 참아온 소원을 빌듯이 동전을 손에 쥐고 있었다. 펜디의 디자이너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는 재개장 현장에서 “특히 우리 로마 사람들에게는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라며 로마와 브랜드의 깊은 유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1925년 로마에서 가죽 공방으로 출발한 펜디는 브랜드 정체성에 로마라는 도시와의 관계를 오랫동안 새겨왔다.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는 이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물은 재생을 상징하는 강력한 소재이고, 로마는 세계에서 물의 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라고 말했다. 그는 1977년 펜디가 제작한 단편영화 〈물의 이야기Histoire d’Eau〉와 1980년 펜디 자매가 펴낸 로마의 분수에 관한 책을 언급하며 “이것은 우리의 카르마였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트레비 분수 복원은 브랜드가 갑작스럽게 시작한 문화 후원이 아니라,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어온 물과 로마에 대한 애정의 연장선이던 셈이다. 펜디의 후원은 자니콜로Gianicolo, 핀초 언덕의 모세 분수Mosè del Pincio, 페스키에라Peschiera 분수 등 로마의 다른 분수 보존 사업까지 지원 범위를 넓히며 펜디 포 파운틴스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2016년 7월, 브랜드 창립 90주년을 맞아 바로 이 트레비 분수 위에서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와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가 디자인한 퍼 컬렉션 런웨이 쇼가 펼쳐졌다. 자신이 복원한 장소에서 다시 한번 로마를 향한 헌사를 완성한 셈이다. 트레비 분수는 오늘도 매일 수천 개의 동전을 삼킨다. 동전을 던지는 사람 대부분은 이 분수가 한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누가 되살렸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펜디에 이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이 다시 흐른다는 것, 그리고 그 물줄기 앞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소원을 빌 수 있다는 것. 브랜드가 도시에 남긴 것은 로고가 아니라 계속 흐르는 물이었다. 취재 협조 펜디(fendi.com)
FONDAZIONE PRADA
버려진 산업 공간을 예술의 미래로 바꾸는 방법
밀라노 남부 라르고 이사르코Largo Isarco에는 1910년대 조성한 증류 공장 단지가 있었다. 소치에타 이탈리아나 스피리티Società Italiana Spiriti라는 이름의 이 공장은 창고와 실험실 및 발효 사일로로 이뤄져 있었고, 한 세기 가까이 밀라노 산업사의 흔적으로 남은 공간이었다.

프라다 재단Fondazione Prada의 역사는 이보다 앞선 1993년,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와 파트리치오 베르텔리Patrizio Bertelli가 현대미술·영화·건축·철학을 아우르는 전시와 행사를 기획하며 시작됐다. 베네치아의 18세기 팔라초 카 코르네르 델라 레지나Ca’ Corner della Regina에 이미 거점을 둔 재단은 2015년 5월 9일, 베니스비엔날레가 개막하는 밀라노에 새 상설 공간을 열었다. 이 프로젝트를 설계한 곳은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이끄는 건축사무소 OMA였다. 콜하스는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의 프라다 플래그십 스토어를 비롯해 15년 넘게 프라다와 협업해온 인물이었다. OMA는 기존 건물 일곱 채를 보존하면서 전시 파빌리온과 영화관, 10층 높이의 타워를 새로 지어 더했다. 1만 9000m2에 달하는 이 복합 단지 안에서 낡은 벽돌 창고와 새 콘크리트 구조물은 의도적으로 뒤섞여 배치됐다. 콜하스는 이 프로젝트를 “보존 프로젝트도, 새로운 건축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프라다 재단이 선택한 것은 기존 시간 위에 새로운 층위를 더하는 방식이었다. 낡은 벽돌과 콘크리트, 산업 공간과 예술 공간은 함께 존재하며 새로운 기억을 만든다. 그는 “우리는 이미 존재하던 것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낡음과 새로움, 수평과 수직, 흰색과 검은색, 열림과 닫힘. 이 대비를 하나로 통합하지 않고 나란히 병치하는 것이 OMA의 방식이었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드는 것은 24캐럿 순금 금박으로 뒤덮인 작은 건물이다. 방문객 사이에서 ‘유령의 집Haunted House’이라 일컫는 이 구조물은 산업 유산의 거친 콘크리트 사이에서 유독 빛나는 존재감으로 서 있다. 그 맞은편,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이 설계한 카페 바 루체Bar Luce에서는 1950~1960년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 〈밀라노의 기적〉과 〈로코와 그 형제들〉에서 가져온 포마이카 가구와 색채가 방문객을 맞는다. 미술관 안에서 밀라노 영화사와 마주하는 순간이다. 개관과 함께 열린 전시 〈시리얼 클래식Serial Classic〉과 〈포터블 클래식Portable Classic〉은 고고학자 살바토레 세티스Salvatore Settis가 공동 기획했다. 고대 조각의 복제와 이동을 주제로 한 이 전시는 재단이 다루는 예술이 결코 유행을 좇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학술적 깊이를 갖춘 담론임을 분명히 했다.

오늘날 프라다 재단은 밀라노 남쪽 산업 지구 라르고 이사르코 일대를 예술 지형의 중심으로 바꿔놓은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한때 술을 발효하던 공간은 이제 세계 각지의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처음 선보이는 장소가 되었다. 미술계에서 “라르고 이사르코에 간다”는 말은 이제 밀라노에서 가장 실험적 전시를 보러 간다는 뜻으로 통한다. 반세기 가까이 방치돼 있던 증류소 자리에서 도시는 새로운 창작의 좌표를 얻었다. 취재 협조 프라다 재단(fondazioneprada.org)
ARMANI/SILOS
곡물 창고를 옷장으로 바꾼다는 것은 40년 시간을 건축에 담는 일

밀라노 토르토나Tortona 지구, 비아 베르고뇨네Via Bergognone 40에는 1950년 건립한 다국적 기업의 산업용 저장 시설이 있었다. 시멘트로 마감한 육중한 사일로 형태의 산업 시설은 2015년 4월 30일, 조르지오 아르마니 브랜드 40주년을 기념하는 상설 전시 공간 아르마니/실로스로 다시 태어났다. 이름을 붙인 이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본인이었다. 그는 “나는 이곳을 ‘실로스’, 즉 저장고라 부르기로 했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인 곡물이 이곳에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음식처럼 옷 역시 삶의 일부다”라고 설명했다. 산업 시대 창고의 본질적 기능, 즉 무언가를 저장하고 지켜낸다는 개념을 그대로 가져와 자신의 40년 경력을 담는 그릇으로 삼은 것이다.

네 개 층, 약 4500m2 규모의 이 공간은 회색 콘크리트와 철골 구조를 드러낸 산업적 분위기를 유지하고, 건물을 둘러싼 긴 수평 창으로 자연광을 끌어들였다. 화려한 장식 대신 산업 건축의 거친 질감을 배경 삼아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아르마니의 6백여 점 의상과 2백여 점 액세서리를 일상복Daywear·이국성Esotismi·색채Cromatismi·빛Luce의 네 가지 테마로 구성했다. 방문객은 입구에서 곡물 저장고이던 시절의 거친 콘크리트 벽을 마주하고, 계단을 오르며 층마다 다른 시대의 아르마니를 만난다. 1980년대의 절제된 파워 슈트에서 시작해 점차 다른 문화권의 색채와 실루엣을 흡수해온 옷이 순서대로 놓여 있다. 화려한 무대조명 대신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옷의 질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디지털 아카이브 공간에는 수십 년간의 스케치와 화보 및 런웨이 영상이 함께 보관되어 이곳이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브랜드 스스로 기억을 저장하는 또 하나의 사일로임을 보여준다.

아르마니/실로스가 문을 연 이후, 이미 창작 지구로 발전하던 토르토나의 문화적 풍경 속에서 아르마니/실로스는 산업 유산을 새 문화 공간으로 전환한 대표 사례가 되었다. 낡은 산업용 사일로는 브랜드의 40년 역사를 담는 그릇이 되었고, 동시에 도시의 산업 유산은 새 문화 자산으로 다시 기능하기 시작했다. 아르마니/실로스는 브랜드의 과거를 보관하는 장소를 넘어 사람들이 패션이라는 시간을 직접 걸으며 경험하는 살아 있는 아카이브로 자리매김했다. 브랜드는 더 이상 제품만 만드는 존재가 아니다. 공간을 만들고 감각을 설계하며, 도시의 시간과 기억 및 미래를 함께 디자인하는 문화적 주체가 되고 있다.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것은 공간에서 직접 느낀 감각과 브랜드가 도시에 남긴 시간의 흔적이다. AI가 이미지를 무한히 생성하는 시대일수록 손끝의 물성과 장소의 기억,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은 더 희소한 가치를 지닌다. 오늘날 럭셔리가 추구하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 오래 기억될 경험과 시간을 설계하는 일이다. 불가리·토즈·펜디·프라다·아르마니의 사례는 오늘날 럭셔리의 역할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취재 협조 조르지오 아르마니(arman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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