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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세태 속에서 꾸준함이란 얼마나 막막한 외로움인가. 얼마나 집요한 신앙인가. 나는 지금 평생 잡지 만드는 일에 골몰한 사람, 50년 동안 한 회사를 일구어온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 회사의 50주년 기념 캠페인 주제를 ‘막’이라는 수상한 접두사 혹은 부사로 삼은 ‘잡지 여왕’에게로 말이다.

첫 번째 이야기: 부사 ‘막’
지금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은 단순히 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젊은 직원의 패기 앞에서 얼굴이 말개졌다가, 내 질문의 행간을 읽으며 미간을 폭 찡그린다. 그러다가 마당의 나무 한 그루에 어린이 같은 표정이 된다. 그를 ‘영혜 선배’로 둔 디자인하우스 편집장들의 증언(네이버 디자인판 ‘Oh! 크리에이터’ 기사)을 들어보면, 그는 ‘호기심으로 뭉친 최고의 기자’ ‘그 자체로 하나의 프로젝트 같은 기획자’ ‘수익보다 철학을 앞세우는 경영인’이다. ‘졸가리 하나로 말할 수 없는 이’라는 뜻이 “나는 우물가 사주래, 사람들이 거기 다 모이잖아. 동네 여자들이 쌀 씻고 콩나물 다듬으며 하는 동네 소식이 다 있잖아. 그래서 나한테 정보가 ‘너어무’ 많대. 인간을 네모상자로 보면 어떤 사람은 그 70~80%가 수학, 어떤 사람은 음악, 이렇잖아. 나는 그 70%에 여러 가지가 다 들어 있어. 한마디로 잡스러운 거야. 그래서 나는 잡지 합니다!”
저 차돌 같은 목소리의 주인이 스물네 살이던 1976년부터 월간 〈디자인〉(4호부터 합류) 기자로, 디자이너로, 편집장으로, 심지어 청소부로 동분서주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급기야 발행인이 유학을 가버리자, 시골 초등학교 교사인 부모님에게 돈을 꿔 잡지를 인수한 일화도 있다(그때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이었다). 1980년 초 언론 통폐합으로 〈디자인〉이 폐간됐을 때 밤새 타이핑한 편지를 대통령에게 보내 4개월 만에 복간한 이야기도 전해온다(편지는 “똑같은 면 티셔츠라도 대우에서 수출하는 우리 옷은 1천 원, 이탈리아 옷은 10만 원에 팔리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 그게 디자인의 차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이후 그는 〈행복이 가득한 집〉 〈럭셔리〉 〈스타일 H〉 등의 잡지 창간, 1994년부터 서울리빙디자인페어, 2002년부터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개최, 양서 1천여 종을 내놓은 출판까지 종횡무진했다(이 밖에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누벨 오브제〉 〈이브〉 〈도브〉 〈맨즈헬스〉 〈맘앤앙팡〉 〈마이웨딩〉 〈더 셀러브리티〉 (잡지), 하나은행 한국타이어 사외보, 네이버 디자인판(디지털) 등 수많은 디자인하우스 매체가 레거시 미디어의 호시절을 주도했다).
“글 쓰는 훈련을 받길 했나, 경영 수업을 제대로 했나. 한마디로 비전문이지. 그래도 이게 얼마나 재밌는 일이냐고, 막 들려온 세상 소식을 누구보다 먼저 듣잖아. 그걸 또 남에게 전달하잖아. 그 호기심에 막 저질러본 거야. 저질러봐야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지. ‘안 되면 말고’ ‘잘못되면 고치지’거든. 〈행복〉 얘기를 해볼까? 〈디자인〉이 뿌리가 돼서 1987년에 〈행복〉을 창간했어, 연예인이나 정치인 가십 없이 우리 독자들이 좋은 소비자가 되게끔 돕는 잡지로 말이야. 그리고 딱 8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어. 광고가 아주 막 들어와. 근데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야. 광고가 많아지면 광고의 질이 우리 잡지하고 안 맞는 게 들어오기도 해. 돈 못 받는 광고도 많아져. 책도 너무 두꺼워져. 그래서 ‘오늘부터 페이지당 4백만 원, 딱 1백 페이지만 받는다고 해버렸지. 당시 잡지 광고비가 1백50만 원쯤 할 때라 직원들의 우려가 컸다고. 근데 3개월 지나니까 4백만 원짜리 광고가 1백 페이지가 됐어. 나는 마케팅이고, 전략이고 몰라. 다만 내가 뭘 전달하려고 하는지, 그러니까 ‘목적’을 갖고 막 덤비는 거야. 거기서부터 빼기를 하나씩 해나가. 어릴 때 나는 탁구, 웅변, 그림, 글짓기, 오르간… 뭐든 잘했는데, 수학을 제일 못했어. ‘What for’를 안 가르쳐주었거든. 인수분해를 ‘왜, 어디다’ 쓸 건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그런 거 보면 난 목적 지향형일까? 아니, 활용 지향적인가?”
2006년 9월 15일, 디자인하우스 창립 30주년을 맞아 올림픽공원에 설치한 페이퍼테이너 뮤지엄, 건축가 반 시게루와 민경식이 종이와 컨테이너로 설계한 이 건축물은 그 자체로도, 그곳에서 60명의 창작자가 ‘여성’과 ‘브랜드’를 이야기한 전시로도 많은 이의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감 좋은 분들은 눈치챘으리라. 〈헨젤과 그레텔〉의 빵 부스러기처럼 그가 흘린 ‘막’이라는 단서를. ‘바로 지금’이라는 뜻을 지닌 시간 부사 ‘막’, 그리고 ‘마구’라는 뜻의 정도 부사 ‘막’이다. 그는 ‘What for’가 생겨나면 바로 그때를 맞춰 순간적 직감으로 ‘마구’ 실행해왔다. 그런데 이 ‘마구’는 그냥 ‘마구’가 아니다. 잡지라는 게 감각적 탈을 쓰고 있지만, 실은 최고로 치밀한 전략 기획서다. 무형의 창조적 노동으로 남의 주머니를 털어내야 하는 일이다. 정보에 대한 관찰력, 취하고 버릴 것에 대한 편집 능력이 필수일 수밖에 없다. 이걸 만들어내는 엔진은 무얼까? 그를 좀 아는 이라면 ‘호기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는 “좌우지간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말이 ‘심심하다'”란다. 집무실 책상이 이 이야기를 증명해준다. 늘 수십 개 잡지와 주요 일간지에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다. 직접 가보고, 맛보고, 해볼 것을 표시해둔다. 그 호기심은 “행동하는 게 비즈니스의 중요 덕목”이라는 믿음과 합쳐져 늘 사방에 예리한 촉수를 뻗는다. 많이 보다 보면 될 것과 안될 것이 보인다. 비즈니스 약속을 하면 카페 대신 회사로 찾아간다. 상대를 이해하는 최고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아, 그의 호기심에 관해 말해주는 중요한 일화가 있다. 〈디자인〉 초창기, 정기 구독자 발송 주소를 매달 직원 다섯 명과 손으로 직접 쓰다 쓰다 그가 결국 컴퓨터 학원에 갔단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도 하니까 “아줌마, 안 나오시면 안 돼요?” 하더란다. 그 장면이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처럼 그려져서 나는 걀걀걀 웃고 말았다. 아. 여기서 중요하게 짚을 단어가 있다. 바로 ‘질문’. 그와 대화하려면 쏟아지는 질문에 즉답을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그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앞서 그가 말한 ‘What for’를 떠올려보자. 그건 ‘어떻게’가 아니라 ‘왜’다. ‘어떻게’가 몰입이라면 ‘왜’는 객관적 거리를 두고 묻는 것이다. 전자가 현미경이라면 후자는 망원경이다. 세상만사를 생소하게, 신기하게, 때론 불안하게 보는 사람이 내놓는 ‘왜’라는 질문. 그걸 떠올리면 디자인하우스가 해온 ‘이상한’ 일들이 이해가 된다.

“2000년에 유럽 미디어 그룹 BRIH가 〈행복〉을 보고 먼저 찾아왔어. 1백억 원을 투자했지. 그 총알도 마련되었겠다. 2006년에 창립 30주년 기념으로 올림픽공원에 페이퍼테이너 뮤지엄(건축가 반 시게루에게 의뢰해 지관紙管, 폐컨테이너로 파빌리온을 만들었다)도 세웠잖아. 50억 원을 들이고 20억 원 적자를 봤지만 지금도 후회 안 해. 3개월 뒤 철거 조건이었는데 호응이 좋아서 1년 유지했어. 종이 관으로 만든 집, 언제든 해체·재조립 가능한 친환경 건축물이라는 ‘미래’를 사람들에게 보여줬잖아. 근데 나중에 그쪽 경영진이 금융계 사람으로 바뀌면서 우리 회사의 방향성을 흔드는 거야. 우리가 벌이는 일이 당장은 돈이 안돼 보이니까. 그래서 2011년에 우리가 2백40억 원 내고 지분을 다시 거둬왔어. 겉만 보면 밑지는 장사를 했지.”
모름지기 기업은 법인法人, 즉 법적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이 회사는 이렇듯 “이거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거였네?” 싶으면 계산기를 종종 치워버렸다.
“나한테 스스로 ‘옳은 일인가’ ‘진실한가’ 질문하고, 그게 맞다고 판단되면 도전하고 감행했지. 그게 ‘막’ 아니고 뭐야? ‘막’이라는 게 겉으로는 태도이고, 속으로는 생각이야. 그게 금방 쉽게 되는 일 같지만, 그 뒤에는 그 사람의 생각, 습관, 기운, 태도 이런 게 도사리고 있다고. 그게 어떤 순간에 밖으로 확 끌려 나오는 거야. 오랜 기간 수련한 도공의 막사발처럼 말이야.”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호명하고, 시대의 습속과 정신을 일깨우는 ‘미디어’의 역할. 이걸 50년 동안 성실히 해온 회사 대표의 말이다. 옛말에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고 했다. 일등 대신 일류가 되고 싶어 한 이 사람의 생각, 그 안에 ‘막’이 있었다. 여기서 잠깐, 양해를 구하고 싶다. 이야기 전달자로서 나는 객관적 태도를 고수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오래 일한 ‘행가집’ 출신으로, 좀체 객관적일 수가 없다. 애독자님들은 이해하실 줄 믿는다.
두 번째 이야기: 접두사 ‘막-‘
이영혜 대표가 아침마다 하는 기도가 있다. 종교는 없지만 자신과 회사를 위해 만든 문장이고, 아침마다 마음속으로 읽는단다.
‘…. 알고도 행하고 모르고도 행한 모든 잘못을 용서해주시옵소서. 남을 성공시키는 생각과 행동으로 갚겠사옵니다…. 밝은 마음, 건강한 몸으로 지혜도 스스럼없이 받는 용기를 갖게 해주십시오. 바른 마음, 바른 길을 바쁠 때는… 정심, 정도….’

여기에 중요 화두가 있다. 바로 남 잘되게 만드는 회사다. ‘모든 비즈니스는 남한테 도움을 주는 것. 디자인이라는 것도 결국 문제를 잘 찾아내고, 잘 해결해서 남을 더 편하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 안에 담겼다. 남 잘되게 하려고 쓰는 방법은 ‘여기와 저기, 이것과 저것을 좀매기’다. 영어로 하면 connect해서 apply한다. 가장 좋은 예가 〈행복〉에서 뻗어나간 서울리빙디자인페어다. 북촌의 고즈넉한 골목에 자리한 지우헌에서, ‘도처에 선생이, 취재 소스가 있다’고 믿는 이영혜 대표는 그걸 빠르게 메모하기 위해 목걸이 볼펜을 걸고 다닌다.
“당시에 〈행복〉 편집부에 들르면 ‘몇 페이지의 그 제품을 어디서 사냐’는 문의 전화로 기자들이 아주 일을 못 봐. 오호라,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줘야겠구나 해서 페어를 만들었어. 디자이너와 소비자도 ‘좀매’주려고 그 페어에서 ‘디자이너스 초이스’라는 기획전을 열고, 또 있네. 취재해보면 농약을 친 건지 아닌지 속속들이 알아. 그래서 〈행복〉에 ‘안방에서 장 보기’ 코너도 만들었어. 〈행복〉을 믿고 보는 지상 홈쇼핑인 거지. 우리 미래는 이제 지역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지역 명품·지역 농산물 특집도 줄곧 했잖아. 전통이랑 현대, 원형이랑 활용을 ‘도시 한옥’이라는 걸로 좀매주려고 ‘행복작당作黨’도 시작했지. 그러고 보면 내가 동화를 잘하는 거 같아. 앞으로 내가, 우리 회사가 하려는 것도 공간 디벨럽먼트야.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디벨로퍼, 이것과 저것을 연결해서 제3의 에너지를 만드는 거, 난 그게 제일 재밌는데 가장 복합적인 분야가 개발이니까.”

여기서 잠시 우리말 중 ‘좀매주는’ 역할을 하는 접두사 ‘막’을 살펴볼까. 막걸리, 막사발, 막국수, 막춤… 한림대학교 이병기 교수는 접두사 ‘막’의 의미를 ‘짧은 시간에(공정이 간소한)’ ‘자연적인(가공을 덜한)’ ‘편리한(실용적인)’으로 읽었다. 아울러 수제手製 지향 시대인 지금이야말로 ‘막’이 ‘거친’이라는 뜻 대신 ‘질 높은’의 의미를 지향한다고 보았다. 어떤 면에서 기업은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생각하는 이영혜 대표가 택한 ‘막’이라는 접사가 이 정도다.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스토리가 엮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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