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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성향을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다면 크게 두 부류라 표현할 수 있다. 받은 만큼만 돌려주려는 사람과 받지 못한 부분까지도 채워주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서울 삼청동 한옥 초이재初怡齋의 주인이자 주얼리 브랜드 텐타클 대표 박희진 씨는 후자에 가까웠다.
“대학 동기 중 어릴 적 마당 있는 집에서 살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가 어릴 적 집에 얽힌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는데, 놀랐어요. 자기가 살던 집 얘기를 하는데, 이렇게 눈이 반짝일 수 있구나 싶었거든요. 집이 주는 온기와 특별함이 있다는 걸 그 친구 덕에 배웠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 아파트에서 저 아파트로 옮겨갈 때마다 문득문득 그 친구의 눈빛이 떠올랐고, 딸 은서의 모습이 겹쳐졌다. 자신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딸만큼은 어릴 적 살던 집을 떠올렸을 때 초롱초롱한 눈빛을 지니기를 바랐다. 몇 해에 걸쳐 고민한 후 한옥살이를 결심하고 남편 최철현 씨를 설득했다.

그렇게 만난 삼청동 한옥. 예전 이 집은 마당을 실내 공간으로 연장한 형태였다. 6인 가족이 살았다는 집주인 할머니 얘기를 듣고 세 가족은 충분히 잘 살 수 있지 싶었다. 이전 집에서 사용하던 큰 가구나 가전은 하나씩 정리하면 될 일이었다. 집의 규모가 좁아진다는 건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가족 간의 눈을 맞추는 거리가 가까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게 소담한 집살이를 결심한 후 집을 짓는 와중에 둘째 해준이가 선물처럼 찾아왔다.

아이들의 웃음이 머무는 다락
아이가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었지만 희진 씨가 집 안에 꼭 두고 싶던 것은 변함없었다. 바로 다락방이다. “어릴 적 할머니 댁 다락에 올라갈 때 추억이 있어요. 마치 비밀의 장소로 향하는 기분이었달까요? 설레기도 하면서 무섭기도 하던 그 추억이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선연히 남아 있어요. 그 경험을 딸 은서에게도, 아들 해준이에게도 선사하고 싶었죠.”
대지면적 86㎡, 연면적 52㎡, 약 15평 정도 규모의 ㄷ자 형태 구조에 방도 만들면서 두 아이를 위한 다락방도 갖추기 위해 공간의 이곳저곳을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설계를 담당한 선한공간연구소 엄현정 소장은 곧 태어날 해준이와 자라날 은서를 위해 어떻게 하면 공간을 효율적이면서도 따뜻하게 쓸 수 있을지, 동시에 두 아이가 안전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도면 위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먼저 다락으로 올라가는 동선과 형태를 고민했다. 사다리 형태의 계단을 설치하는 건 아이의 안전을 생각할 때 다소 위험할 수 있었다. 계단을 최대한 완만하게 만들고자 단의 개수를 줄이기로 했다. 또한 다락방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네 가족이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는 안방의 단을 낮췄다. 다락방과 지층을 이어주는 계단 사이에는 대청 바닥을 한 단 올려 수납함이자 온 가족이 모여 앉는 벤치를 마련해 집 안의 중심을 잡았다.
희진 씨는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목욕놀이를 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욕실 또한 원했다. 엄현정 소장은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물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욕실에는 욕조만 두고, 다른 기능은 별도로 분리했다. 욕조의 경우 모서리 없이 둥글게 처리해 안전을 고려했고, 아이가 편히 앉아서 씻을 수 있도록 욕조 안에 자그마한 계단도 만들었다. 타일의 경우 내구성도 좋고, 오염에도 강한 타일을 고르는가 하면, 줄눈에는 브라운색을 넣어 공간에 따뜻하고 밝은 무드를 조성했다. 세면대 또한 컬러감을 주어 두 아이에게 씻는 행위 자체가 놀이의 연장선처럼 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부부와 자녀가 복작거리며 살아갈 한옥은 어느 한 곳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네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함께 자고 일어나는 안방의 경우, 면적의 일부를 드레스룸으로 할애했다. 여기에 두 개의 문을 내어 한 쪽은 안방에서, 또 한쪽은 대청에서 출입이 가능하게 했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남편이 꿈나라에 있는 아이들의 잠을 깨우지 않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고려한 부분이다. 부엌 천장 위에는 사다리를 달고 자주 쓰지 않는 짐을 적재할 수 있는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부부의 책, 아파트에 걸려 있던 큼지막한 그림들, 안 쓰는 전자 기기들을 세모 천장 속에 숨겨두었다.

한옥이 열어준 새로운 일상
금속공예를 전공한 희진 씨는 한옥 짓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집 하나가 거대한 공예 작품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씩 쌓아 올리는 기와, 제각각의 나무 서까래 틈을 채워 넣는 미장, 모든 과정에 정성이 깃들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죠. 그 과정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던 것은 공예를 전공한 제게 더욱 특별한 의미이기도 했어요.”



가히 정성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초이재를 짓는 과정에 그도 손을 보탰다. 가족의 손이 많이 닿는 부분 중 하나인 화장실 문, 안방 문, 옷방 문의 손잡이를 알루미늄을 주조해 직접 제작한 것. 형태의 경우, 동글동글한 모양에 착안해 뭉툭하면서 동그랗고 부드라운 선을 살려 만들었다. “둘째 아이가 갓 태어난 무렵이었는데요, 작업하면서 알게 모르게 해준이의 보드랍고 통통한 손을 떠올린 것 같아요.”
한옥살이에 부정적이던 남편 철현 씨는 네 가족 중 마당 점유율이 가장 높은 사람이 됐다. 아파트에 살 때는 하지 못하던 것을 마당이 생기자 자연스레 시도했다. 아빠가 생활복 차림으로 마당에서 테니스나 골프 연습을 하고 있으면 아이들은 창문에 들러붙어 바라보는 게 새로운 일상이자 장면으로 자리매김했다.

전문가
엄현정 | 선한공간연구소
선한공간연구소의 엄현정 소장은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 건축과를 졸업하고, 2007년부터 2017년까지 간삼건축에서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한국 파트너로 재능문화센터(JCC 아트센터), 마곡 LG 아트센터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일본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생긴 한국의 전통 건축과 주거 문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선한공간연구소를 설립해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전통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www.seon-spa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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