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기한 요술 놀이에 나는 아직도 홀려 있다”

한국 데뷔 50주년 전시 연 화가 김원숙

글 최혜경 | 사진 이기태 기자(인물) | 취재 협조 예화랑(02-542-5543)

김원숙 작가가 “내가 만난 가장 긍정적 인간”이라고 말하는 토머스 클레멘트는 의료 기구 특허를 수십 개 보유한 발명가다. 두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재단을 운영하면서 325KAMRA(한인 입양인 DNA 검사·가족 찾기 비영리 단체), 모교인 하워드 커뮤니티 칼리지 등에 거액을 기부해왔다.

단순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 스쳐가는 인상과 향수로만 김원숙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면 큰 오산이다. 슬픔을 숭어리째 떨춰 버리고 마는 희망에 관해 말하는 그림, 그리하여 우리를 위로하는 그림이다. 50주년 기념 개인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와 남편 토머스 클레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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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누군가 껴안아주는 게 필요할까? 스스로 외로움을 껴안기에 인간은 팔이 짧다. 마음속 구멍을 다 끌어안기에 팔은 두 개뿐이다. 꽤 오랫동안 〈행복〉 편집부에 김원숙 작가의 작은 석고 조각이 앉아 있었다. 기자들은 며칠씩 밤샘 마감하며 온백색warm white의 여인상을 자주 바라보았다. ‘아이고 뜨거워’ 인생의 매운맛도, ‘아이고 쓰라려’ 그 짠맛도, ‘아이고 저려’ 신맛도 다 본 듯한 여인의 웅크린 좌상坐像. 그 존재가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아서, 껴안아주는 것 같아서 다들 물끄러미 보았다.

‘Woman with a Boat’, cast bronze, 103×112×3cm, 2019. ‘Jar of Stars’, oil on wood, 37×42×0.5cm, 2007.
‘Woman with a Boat’, cast bronze, 103×112×3cm, 2019. ‘Jar of Stars’, oil on wood, 37×42×0.5cm, 2007.
‘Jar of Stars’, oil on wood, 37×42×0.5cm, 2007.
‘Jar of Stars’, oil on wood, 37×42×0.5cm, 2007.


“사실 그거, 중요한 얘기예요. 우린 왠지 예술 작품 앞에선 차렷! 해야 할 것 같고 사조도, 작가 내력도 좀 알아야 할 것 같잖아. 근데 그거 다 필요 없어. 중요한 건 커넥션! 그냥 그 앞에 서보고, 나한테 와닿는 느낌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자신을 읽어나가면 돼요.”

‘Dance in the forest’, oil on canvas,142×180cm, 2009.
‘Dance in the forest’, oil on canvas,142×180cm, 2009.

집, 나무, 여인, 달, 호수, 바람…. 그는 이 친숙한 존재를 시처럼 응축된 이미지로 불러내는, 말하자면 이야기꾼이다. 때론 꿈처럼, 신화처럼, 역사처럼 말이다. 회화·판화·드로잉·조각·설치 등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평론가들이 김원숙 그림에서 ‘고정된 의미가 없는 기호’를 읽어내고, ‘불확정적 현실’을 포착한다 하더라도 관람객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저 그림 앞에서 “달빛 같은 위로를 받고 갑니다” 같은 고백을 꺼내놓고 만다. 김원숙의 그림은 왜 우리에게 위로가 될까?

긁다-그리다-그림-그리움-그림자
이어령 선생은 ‘글書’ ‘그림畵’ ‘그리움慕’이 모두 ‘긁다’와 뿌리가 같은 말이라고 보았다. “글씨를 긁으면 글이 되고, 모양을 긁으면 그림이 된다. …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나 모습을 긁는 것이 그리움이다.”(〈오늘보다 긴 이야기〉) 나는 여기에 ‘그림자’(옛말로 ‘그르매’ 또는 ‘그리메’)를 하나 더 보태고 싶다. 빛이 물체에 긁혀 생긴 그것 말이다. 김원숙 그림에서 그림자는 빼놓을 수 없다. 누구는 상실, 누구는 죽음, 누구는 겨울이라 부른다. 이번 전시 작품을 볼까. 부러져 강물에 고꾸라진 나무 그림 ‘Tree by the river’,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려는 여인을 그린 ‘Flight of Hope’, 검푸른 하늘과 언 땅 사이 그림자를 그린 ‘겨울밤’ 연작…. 모두 본능적으로 상실과 죽음의 문법으로 읽는다.

1층 전시장에는 잠 오지 않는 밤에 그가 정원에서 보는 바람 소리, 빗소리 같은 것이 주인공인 작품이 걸렸다. 그야말로 ‘이야기하는 붓’이라 할 만하다. 바탕에 스며들었다가 다시 뱉어낸 듯한 김원숙 그림의 색조를 보고 있으면 왜 “달빛 같은 위로를 받고 갑니다”라는 말이 나오는지 알겠다.
1층 전시장에는 잠 오지 않는 밤에 그가 정원에서 보는 바람 소리, 빗소리 같은 것이 주인공인 작품이 걸렸다. 그야말로 ‘이야기하는 붓’이라 할 만하다. 바탕에 스며들었다가 다시 뱉어낸 듯한 김원숙 그림의 색조를 보고 있으면 왜 “달빛 같은 위로를 받고 갑니다”라는 말이 나오는지 알겠다.

“우리 아버지가 99세인데 고관절 뼈가 부러졌어요. 그 나이엔 그게 죽음하고 똑같거든. 우리 딸은 코로나19 백신을 잘못 맞아서 전신 마비가 왔어요. 나는 걔가 죽는 줄 알았다고. 표면만 보면 비극이잖아. 근데 아버지가 그래. 요즘 안 해본 생각을 한다고. 장애인이 볼 때 높이가 이렇겠구나, 한대요. 우리 딸도 많이 회복되었지만 완치는 안 되는 병이거든. 근데 그 애가 그래. ‘이게 곧 지나갈 거고, 안 지나가도 난 더 좋은 걸 갖고 있어.’ 내 그림 봐요. 부러진 나무가 머리를 물에 박고 있지만, 물속에서 다시 뿌리를 내릴 거야. 죽음은 죽음에서, 생명은 생명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거지. 그림자는 어두운 것만이 아니라 빛 때문에 못 보던 실상을 보여준다는 거예요. 절벽 끝 여자 그림도 이렇게 말하는 거잖아. ‘떨어지는 것만이 옵션은 아니다. 날아오를 수도 있다.’”
아버지는 딸의 전시 제목을 장춘長春, 곧 ‘Eternal Spring-영원한 봄’이라 지어주었다. “얼어붙은 것, 견디기 힘든 시간 다음에 오는 것”이라는 의미였다.새순은 제 살을 찢고 나와 돋는다. 샘물은 바위 상처에서 흘러나온다. 그림, 그리움, 그림자…. 긁힌 자리에서 피어난 무늬가 우리를 살게 한다. 김원숙 작가는 그림으로 이걸 말해준다. “말과 침묵, 빛과 그림자, 실물과 환영, 산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롭고 재미있지 않은가.”

‘Evening Tree II’, oil on canvas, 66.5×71cm, 2021.
‘Evening Tree II’, oil on canvas, 66.5×71cm, 2021.

갇힌 존재에서 사랑하고 창조하는 존재로
스무 해를 함께한 그의 첫 결혼은 그림 그리는 아내를 반대하던 남편과 이혼하며 끝났다. “죽을 것 같던 껌껌한 굴”이었다. 쉰 살에 발명가 토머스 클레멘트를 만나 재혼했다(한국인과 미국인 혼혈인 토머스는 너덧 살에 친모에게 버려진 뒤 미국으로 입양된 전쟁고아였다). 행복한 감정이 여과 없이 그림에 담겼다. 그를 아끼던 미술 평론가 이경성은 그 그림을 보고 “이제 화가로서 끝난 거야”라며 질책했다. “이게 이발소 그림이지 뭐냐”라며 염려하는 이도 있었다.
“자기한테 절실한 거를 하는 게 진짜라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 생각하면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 그걸 숨기고 미술가적 경향만 찾을 수가 있나. ‘이게 지금 나의 솔직한 마음이에요. 이걸 좀 더 그릴게요’ 했어요. 근데 이거 완전히 매직이야. 날 속이고 가짜를 만들어놓으면 ‘진짜’ 가짜가 돼.” 놀랍게도 그의 캔버스 속 여자는 이전의 집 혹은 제도에 갇힌 존재에서 사랑하고 창작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토머스는 나에게 사람을 사랑하는 거, 그림자를 사랑하는 거, 남을 사랑하는 거, 나한테 주어진 삶을 고마워하는 거,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데 ‘절망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확실한 믿음’을 보여줬어요.” 전쟁의 기억, 어머니의 기억, 거리 생활의 기억, 혼혈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던 보육원의 기억…. 머슬 메모리muscle memory로 선명하게 남은 비극에도 토머스는 절망하며 웅크리지 않았다.
“절망도 누가 받아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이 사람에게 그건 생존에 대한 이야기거든. 나는 이렇게 긍정적인 인간을 본 적이 없어. 좀 바보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예요.”미국 특허를 수십 개 보유한 의료 기기 회사 대표를 지낸 토머스는 회사를 팔아 얻은 수익을 김원숙 작가의 모교에 기부했다. “전쟁과 가난에서 벗어난 나라를 넘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한국을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이 1천2백만 달러에 담겼다. 일리노이 주립대는 예술대학 이름을 ‘김원숙 칼리지’로 바꾸었다.

가운데 작품이 작가가 절벽 앞에서 날아오른다고 설명한 ‘Flight of Hope’, acrylic on canvas, 240×147cm, 2018.
가운데 작품이 작가가 절벽 앞에서 날아오른다고 설명한 ‘Flight of Hope’, acrylic on canvas, 240×147cm, 2018.

내가 생각지도 못하던 것까지
1976년 오광수 선생의 추천을 받아 명동화랑에서 첫 한국 전시를 열었으니, 올해가 한국 데뷔 50주년이다.
“최근 작품들의 변화? 그런 건 없어요. 나한테 변화가 없는데 뭐. 나는 요즘 기도를 이렇게 해요. ‘하나님, 나한테 충분히 주셨기 때문에 저는 이제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불운이 온대도 한숨 한 번 쉬면서 ‘이거 다 지나가면 내가 생각지도 못하던 일들이 벌어질 거야’ 생각하지. 이건 73세가 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이번 전시에서 그의 그 유명한 ‘집’ 연작 아래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내 눈과 마음에 보이는 것을 그리려고 하지만, 그리다 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안 보이는 것까지 그려지는 이 신기한 요술 놀이에 나는 아직도 홀려 있다.”예술이란 세상에 없는 걸 드러내는 게 아니라, 있던 걸 들춰보는 것이리라. 자기가 걸어온 인생길에 있던 것을. 김원숙 작가의 ‘삶은, 그림’이라는 곡진한 메시지는 세헤라자데의 이야기처럼 끝도 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립게, 그림자처럼 은밀하게.

INTERVIEW
전시를 기획한 예화랑 김방은 대표

예화랑 김방은 대표

“선생님과 예화랑의 인연은 어머니(1세대 화상 이숙영 대표) 때인 1983년부터 시작했는데, 이번이 벌써 일곱 번째 개인전이에요. 제 성장 과정을 선생님이 곁에서 다 지켜봐주셨다는 점에서 이번 50주년 전시가 제게도 남다릅니다. 선생님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주제를 스토리텔링하듯 구성하려고 노력했죠. 1층에는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선생님이 정원에서 ‘보는’ 것, 그러니까 빗소리·바람 소리 같은 감각이 주인공이 되는 작품을 전시했어요. 2층은 선생님께 각별한 의미가 있는 ‘집’ 연작을 전시했는데요, 캔버스가 집이 되고, 집 안에 그림을 그려 넣는 천재적 역발상이 엿보이죠. 3층은 선생님 혼자 노는 공간이 작업으로 옮겨진 층이고요. 관람객들이 단순히 ‘감동적이다’라기보다 ‘나한테 터치가 된다’라며 이번 전시를 많이 좋아해주셨습니다.” 김원숙 개인전 〈Eternal Spring〉은 8월 22일부터 9월 23일까지 예화랑에서 열렸다. 문의 02-542-5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