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농가에서 만나는 남티롤 라이프스타일

셰프 슈테판 프람스트랄러Stefan Pramstrahler

글 백세리 기자 | 사진 Fabrizio Cicconi

13세기 농가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에 검은 스틸 조리대를 더한 주방.

이탈리아 북부의 남티롤 피에 알로 실리아르Fiè allo Sciliar, 포도밭과 숲 사이에 13세기 농가 마조 그로트너Maso Grottner가 숨어 있다. 와인을 빚고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던 오래된 집은 이제 가족이 머물며 쉬고, 때때로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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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아름다운 집
셰프 슈테판 프람스트랄러는 어린 시절 금세공인을 꿈꿨다. 작고 귀한 물건을 손으로 빚으며 정성을 들이는 일에 매력을 느꼈지만, 마음은 차츰 요리로 향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요리를 잘했고, 삼촌은 마조 그로트너에서 약 5km 떨어진 피에 알로 실리아르 중심부의 가족 경영 호텔인 로만티크 호텔 투름의 주방을 이끌던 스타 셰프였다. 어린 슈테판은 삼촌 곁에서 부야베스와 달팽이 요리를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주방의 풍경을 익혔다.
“어릴 때부터 늘 주방 가까이에서 자랐습니다. 삼촌을 도우며 보낸 시간이 훗날 제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 것 같아요.” 열네 살에 금세공인의 꿈을 접은 그는 메라노의 호텔·요리학교에 진학했다. 열여덟 살에는 프랑스 알자스의 비상부르로 건너가 레스토랑 ‘춤 슈반Zum Schwan’에서 프랑스와 알자스 요리를 배웠다. 이후 밀라노에서 일하며 좋은 식재료를 세심하게 다루는 이탈리아 요리에 눈떴다. 프랑스 요리가 자신의 성향에는 다소 복잡하게 느껴졌다면, 이탈리아에서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도 섬세한 요리를 완성하는 법을 배웠다. 로만티크 호텔 투름의 셰프 자리가 비자 고향으로 돌아왔고, 이후 요리와 공간을 함께 가꾸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오래된 조리 도구와 현대적 설비가 어우러진 이곳에서 슈테판의 쿠킹 클래스가 열린다.
오래된 조리 도구와 현대적 설비가 어우러진 이곳에서 슈테판의 쿠킹 클래스가 열린다.
창가 앞 탁자에 차린 남티롤식 농가 조식.
창가 앞 탁자에 차린 남티롤식 농가 조식.
다이닝 공간은 슈테판 가족이 가장 사랑하는 곳.
다이닝 공간은 슈테판 가족이 가장 사랑하는 곳.
조리 도구와 그릇 컬렉션은 슈테판 프람스트랄러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조리 도구와 그릇 컬렉션은 슈테판 프람스트랄러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소나무로 마감한 전통 농가의 슈투베. 낡은 목재와 석재 바닥을 그대로 살려 13세기 농가의 시간을 이어간다.
소나무로 마감한 전통 농가의 슈투베. 낡은 목재와 석재 바닥을 그대로 살려 13세기 농가의 시간을 이어간다.

마조 그로트너는 슈테판의 젊은 시절 추억이 깃든 곳이다. 당시 이곳에는 나이 든 어머니와 두 자녀의 농부 가족이 살고 있었다. 가을이면 갓 수확한 포도와 밤, 지역 음식을 함께 즐기는 남티롤의 전통 풍습 ‘퇴르크겔렌Trggelen’으로 손님을 맞았고, 슈테판도 친구들과 자주 찾아와 오랜 시간 음식을 나누며 어울렸다. 집은 말끔하게 관리되지 않았지만 중세 농가의 구조는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 주변을 감싸는 고요한 분위기가 그의 마음을 끌었다.
“이곳은 제가 늘 사랑하던 장소입니다. 기온과 햇빛 및 바람이 이상할 만큼 완벽하게 맞아 떨어져요. 여름은 조금 더 길고, 봄은 다른 곳보다 먼저 찾아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특별한 미기후가 있는 곳이지요.”
농가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슈테판은 2007년 건물을 사들였다. 고양이가 마음에 드는 자리를 거듭 찾듯 자신도 이곳으로 되돌아왔다고 그는 회상한다. 가족이 편히 쉬고, 가까운 사람들과 작은 모임을 열 수 있는 장소로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마조 그로트너가 자리한 노발레Novale 지역은 중세 시인이자 음유시인인 오스발트 폰 볼켄슈타인Oswald von Wolkenstein 시대의 문헌에도 등장합니다. 그가 이 일대에서 새를 사냥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죠. 농가는 처음에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었고, 이후에는 퇴르크겔렌으로 이름난 전통 음식점이 됐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제가 사들일 무렵에는 붕괴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훼손돼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난 식재료를 사용하는 슈테판의 요리. 자연의 맛을 살리는 그의 조리 철학이 한 그릇에 담겼다.
지역에서 난 식재료를 사용하는 슈테판의 요리. 자연의 맛을 살리는 그의 조리 철학이 한 그릇에 담겼다.
시금치와 알프스 치즈 크뇌델.
시금치와 알프스 치즈 크뇌델.
감자와 비트로 만든 반죽으로 요리하는 슈테판 프람스트랄러.
감자와 비트로 만든 반죽으로 요리하는 슈테판 프람스트랄러.
흰 당근과 자색 당근 등 재철 채소를 담은 한 접시.
흰 당근과 자색 당근 등 재철 채소를 담은 한 접시.
높은 아치형 천장과 석재 바닥이 이어지는 긴 복도. 원형을 살린 건축물에 촛불을 밝혀 고요한 분위기를 더했다.
높은 아치형 천장과 석재 바닥이 이어지는 긴 복도. 원형을 살린 건축물에 촛불을 밝혀 고요한 분위기를 더했다.

13세기의 집에 오늘을 더하다

슈테판 부부가 세운 복원 원칙은 오래된 건물을 새것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수백 년 동안 쌓인 흔적은 남겨두되, 가족이 실제로 생활하고 초대한 손님도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설비와 기능을 보완하고자 했다. 문화유산으로 보호받는 건물이었기에 모든 공정은 기존 구조를 존중하며 신중하게 진행해야 했다. 복원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여러 해에 걸쳐 이어졌다.
가장 까다로운 부분은 주방과 침실이었다. 현대적 조리 시설과 위생·안전 규정을 충족해야 했고, 침실에는 오늘날의 편의를 더하면서도 농가 특유의 분위기를 지켜야 했다. 지열 난방을 설치할 때는 오래된 돌바닥을 한 장씩 걷어낸 뒤 설비 공사를 하고, 각각의 돌을 원래 자리에 갖다놓았다. 낡았다는 이유로 없애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 새로운 기능을 덧붙이는 방식이었다.
집 안에는 과거의 생활을 보여주는 공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젤히퀴헤selchküche’라 부르는 훈연실의 천장은 오랜 세월 고기와 소시지를 훈연하며 생긴 그을음으로 검게 물들었다. 빵을 굽던 장작 화덕은 지금도 사용할 수 있다. 교차 볼트 천장의 복도와 스위스 소나무로 짠 전통 농가 거실 ‘슈투베stube’도 원형을 유지했다. 지하 저장고에는 이곳에서 와인을 생산하던 시절의 오래된 나무통이 남아 있다. 나무와 와인의 향이 밴 통은 별다른 장식 없이도 농가가 지나온 세월을 보여준다.
“이 집의 중심은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주방과 거실, 식탁입니다. 마조 그로트너는 상시 운영하는 일반 호텔이라기보다 저희 부부가 가족과 머물며 소수의 사람을 초대하는 집에 가깝죠. 요리 수업이나 사적인 식사, 작은 모임을 열기도 합니다.”

마조 그로트너에서 함께 지내는 말과 교감하는 슈테판 프람스트랄러. 농가에서 동물을 돌보는 일은 그의 일상을 이루는 한 부분이다.
마조 그로트너에서 함께 지내는 말과 교감하는 슈테판 프람스트랄러. 농가에서 동물을 돌보는 일은 그의 일상을 이루는 한 부분이다.
거친 돌벽과 아치형 출입구에서 13세기 농가의 오래된 건축적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거친 돌벽과 아치형 출입구에서 13세기 농가의 오래된 건축적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연을 누리고, 식탁을 나누는 하루

마조 그로트너의 아침은 오래된 슈투베나 중정에서 시작된다. 슈테판 부부는 가족과 함께 남티롤식 아침 식사를 차리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식탁을 바깥으로 옮긴다. 낮에는 농가 주변의 바위와 숲 사이를 걷는다. 여름에는 숲길을 걷고, 겨울이면 건초 목욕을 즐기며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낀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자연 속을 걷고, 제철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한 식탁에 둘러앉는 일로 이어진다.
슈테판은 지역의 자연과 전통을 요리에 담는다. 그가 사용하는 식재료는 대부분 인근 농부에게서 온다. 쇠고기를 공급하는 농가는 소를 해마다 해발 2600m의 슐레른산 목초지로 보내고, 소들은 약 넉 달 동안 자유롭게 오가며 고산지대의 어린 풀을 뜯어 먹는다. 메추리알을 공급하는 농부는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메추라기에게 먹이고, 채소를 가져오는 농부들은 갓 수확한 야생 허브와 뿌리채소를 함께 건네곤 한다.
“마조 그로트너의 지하에서는 제가 직접 만드는 그로트너 와인도 숙성됩니다. 높은 고도와 토양이 포도의 개성을 만들고, 오래된 저장고의 온도와 습도가 그 시간을 이어가죠. 농가를 둘러싼 포도밭과 숲, 슐레른산의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 집의 생활과 요리를 완성하는 일부입니다. 요즘에는 단순한 것을 알아보고, 소중히 여기는 일 자체가 하나의 사치가 된 것 같습니다.”
슈테판 부부가 이곳에서 지키려 하는 것은 오래된 건물의 형태만이 아니다. 계절을 따르는 식재료와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방식까지 이어가고자 한다. 슐레른산을 향해 문을 연 이 집에서는 수백 년 된 풍경이 한 가족의 일상 속에서 여전히 살아간다.